[앵커&리포트] “일, 국가총동원법 따라 위안부 강제 동원”
입력 2014.03.24 (21:05)
수정 2014.03.24 (22:1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멘트>
중일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제국주의는 난징을 함락하고도 중국의 저항이 계속 되자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만들었습니다.
이 법은 의회 승인없이 전쟁수행에 필요한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군이 총동원해서 쓸 수 있다는 이른바 전시 통제법이었습니다.
바로 이 국가총동원법에 근거해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 동원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됐습니다.
중국 지린성에서 김명주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리포트>
1941년 중국 헤이룽장성에 살던 일본인이 일본 니가타의 지인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당시 헤이허 위안소 병력, 즉 위안부 20명이 모두 조선인이며, 방자, 화자 등 일본식 이름으로 불렸다고 적었습니다.
특히, 이 조선인 위안부들은 일제의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강제 징집됐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 편지는 일본군의 우편검열 과정에서 압수됐고, 2차대전 패망과 함께 일본군이 땅에 묻어 숨겨놨던 것입니다.
<녹취> 무짠이(중국 지린성기록보관소 부소장) : "일본군은 위안부 관련 내용이 공개되면 안된다는 인식을 갖고 이런 편지나 문서들을 압수나 삭제 처리됐습니다."
일본군이 전시법인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위안부들을 강제 동원했다는 사실이 문건으로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 문서보관창고에는 10만여 권의 각종 일본군 침략 관련 자료들이 보관돼 있습니다.
지린성 기록보관소 측은 엄격한 절차를 거쳐 외국 언론에게 이곳을 처음으로 공개했습니다.
<녹취> 자오위제(지린성 기록보관소 연구원) : "여기부터 저기까지는 모두 관동군 헌병대 관련 자료들인데 3,460권에 달합니다."
위안부를 강제동원한 증거가 없다는 일본 아베 정권과 우익세력의 주장은 이제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됐습니다.
지린성 창춘에서 KBS 뉴스 김명주입니다.
중일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제국주의는 난징을 함락하고도 중국의 저항이 계속 되자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만들었습니다.
이 법은 의회 승인없이 전쟁수행에 필요한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군이 총동원해서 쓸 수 있다는 이른바 전시 통제법이었습니다.
바로 이 국가총동원법에 근거해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 동원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됐습니다.
중국 지린성에서 김명주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리포트>
1941년 중국 헤이룽장성에 살던 일본인이 일본 니가타의 지인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당시 헤이허 위안소 병력, 즉 위안부 20명이 모두 조선인이며, 방자, 화자 등 일본식 이름으로 불렸다고 적었습니다.
특히, 이 조선인 위안부들은 일제의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강제 징집됐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 편지는 일본군의 우편검열 과정에서 압수됐고, 2차대전 패망과 함께 일본군이 땅에 묻어 숨겨놨던 것입니다.
<녹취> 무짠이(중국 지린성기록보관소 부소장) : "일본군은 위안부 관련 내용이 공개되면 안된다는 인식을 갖고 이런 편지나 문서들을 압수나 삭제 처리됐습니다."
일본군이 전시법인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위안부들을 강제 동원했다는 사실이 문건으로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 문서보관창고에는 10만여 권의 각종 일본군 침략 관련 자료들이 보관돼 있습니다.
지린성 기록보관소 측은 엄격한 절차를 거쳐 외국 언론에게 이곳을 처음으로 공개했습니다.
<녹취> 자오위제(지린성 기록보관소 연구원) : "여기부터 저기까지는 모두 관동군 헌병대 관련 자료들인데 3,460권에 달합니다."
위안부를 강제동원한 증거가 없다는 일본 아베 정권과 우익세력의 주장은 이제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됐습니다.
지린성 창춘에서 KBS 뉴스 김명주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앵커&리포트] “일, 국가총동원법 따라 위안부 강제 동원”
-
- 입력 2014-03-24 21:07:06
- 수정2014-03-24 22:12:28

<앵커 멘트>
중일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제국주의는 난징을 함락하고도 중국의 저항이 계속 되자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만들었습니다.
이 법은 의회 승인없이 전쟁수행에 필요한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군이 총동원해서 쓸 수 있다는 이른바 전시 통제법이었습니다.
바로 이 국가총동원법에 근거해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 동원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됐습니다.
중국 지린성에서 김명주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리포트>
1941년 중국 헤이룽장성에 살던 일본인이 일본 니가타의 지인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당시 헤이허 위안소 병력, 즉 위안부 20명이 모두 조선인이며, 방자, 화자 등 일본식 이름으로 불렸다고 적었습니다.
특히, 이 조선인 위안부들은 일제의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강제 징집됐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 편지는 일본군의 우편검열 과정에서 압수됐고, 2차대전 패망과 함께 일본군이 땅에 묻어 숨겨놨던 것입니다.
<녹취> 무짠이(중국 지린성기록보관소 부소장) : "일본군은 위안부 관련 내용이 공개되면 안된다는 인식을 갖고 이런 편지나 문서들을 압수나 삭제 처리됐습니다."
일본군이 전시법인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위안부들을 강제 동원했다는 사실이 문건으로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 문서보관창고에는 10만여 권의 각종 일본군 침략 관련 자료들이 보관돼 있습니다.
지린성 기록보관소 측은 엄격한 절차를 거쳐 외국 언론에게 이곳을 처음으로 공개했습니다.
<녹취> 자오위제(지린성 기록보관소 연구원) : "여기부터 저기까지는 모두 관동군 헌병대 관련 자료들인데 3,460권에 달합니다."
위안부를 강제동원한 증거가 없다는 일본 아베 정권과 우익세력의 주장은 이제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됐습니다.
지린성 창춘에서 KBS 뉴스 김명주입니다.
중일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제국주의는 난징을 함락하고도 중국의 저항이 계속 되자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만들었습니다.
이 법은 의회 승인없이 전쟁수행에 필요한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군이 총동원해서 쓸 수 있다는 이른바 전시 통제법이었습니다.
바로 이 국가총동원법에 근거해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 동원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됐습니다.
중국 지린성에서 김명주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리포트>
1941년 중국 헤이룽장성에 살던 일본인이 일본 니가타의 지인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당시 헤이허 위안소 병력, 즉 위안부 20명이 모두 조선인이며, 방자, 화자 등 일본식 이름으로 불렸다고 적었습니다.
특히, 이 조선인 위안부들은 일제의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강제 징집됐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 편지는 일본군의 우편검열 과정에서 압수됐고, 2차대전 패망과 함께 일본군이 땅에 묻어 숨겨놨던 것입니다.
<녹취> 무짠이(중국 지린성기록보관소 부소장) : "일본군은 위안부 관련 내용이 공개되면 안된다는 인식을 갖고 이런 편지나 문서들을 압수나 삭제 처리됐습니다."
일본군이 전시법인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위안부들을 강제 동원했다는 사실이 문건으로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 문서보관창고에는 10만여 권의 각종 일본군 침략 관련 자료들이 보관돼 있습니다.
지린성 기록보관소 측은 엄격한 절차를 거쳐 외국 언론에게 이곳을 처음으로 공개했습니다.
<녹취> 자오위제(지린성 기록보관소 연구원) : "여기부터 저기까지는 모두 관동군 헌병대 관련 자료들인데 3,460권에 달합니다."
위안부를 강제동원한 증거가 없다는 일본 아베 정권과 우익세력의 주장은 이제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됐습니다.
지린성 창춘에서 KBS 뉴스 김명주입니다.
-
-
김명주 기자 silk@kbs.co.kr
김명주 기자의 기사 모음
-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