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징용 현장을 가다] 일 ‘침략 역사 지우기’
입력 2014.08.14 (21:22)
수정 2014.08.14 (22:46)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멘트>
광복절을 앞두고 강제징용 문제를 짚어보는 순서입니다.
일본 여러 곳에서 지금 일본 우익의 반대로 강제징용 피해자 추모비나 위령비가 세워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죽어서도 서러운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박재우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일본 최북단의 한 목장.
태평양전쟁 당시 비행장이었습니다.
활주로와 공군 부대를 만드는데 조선인 4천 명이 강제동원됐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던 것은 당시 전쟁물자 부족으로 콘크리트가 없어 이 넓은 활주로 바닥을 15cm 두께가 넘는 두꺼운 나무판자로 모두 깔았기 때문입니다.
중노동과 혹한에 시달리다 숨진 조선인들은 모두 숲속에 버려졌습니다.
유골 39구를 찾았지만 추모비 설치는 중단됐습니다.
<인터뷰> 채홍철(홋카이도 포럼 공동대표) : "일본 우익들이 지자체에 항의를 해서 건립이 일단 중지됐습니다."
1943년 완공된 수력발전댐.
조선인 강제징용자 3천 명 가운데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일부 유골만 발굴됐습니다.
<인터뷰> 윤정구(유골발굴 참가자) : "일본 정부가 (기록을) 내놓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한, 시민단체가 해결할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익들의 반대로 변변한 위령비도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4년 세워졌던 이 조선인 강제징용 추도비는 철거 위기, 나라현의 조선인 강제연행과 일본군 위안소 설명판은 사라졌습니다.
아베 정부 출범 이후 일본 우익의 `침략 역사 지우기' 움직임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홋카이도에서 KBS 뉴스 박재우입니다.
광복절을 앞두고 강제징용 문제를 짚어보는 순서입니다.
일본 여러 곳에서 지금 일본 우익의 반대로 강제징용 피해자 추모비나 위령비가 세워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죽어서도 서러운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박재우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일본 최북단의 한 목장.
태평양전쟁 당시 비행장이었습니다.
활주로와 공군 부대를 만드는데 조선인 4천 명이 강제동원됐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던 것은 당시 전쟁물자 부족으로 콘크리트가 없어 이 넓은 활주로 바닥을 15cm 두께가 넘는 두꺼운 나무판자로 모두 깔았기 때문입니다.
중노동과 혹한에 시달리다 숨진 조선인들은 모두 숲속에 버려졌습니다.
유골 39구를 찾았지만 추모비 설치는 중단됐습니다.
<인터뷰> 채홍철(홋카이도 포럼 공동대표) : "일본 우익들이 지자체에 항의를 해서 건립이 일단 중지됐습니다."
1943년 완공된 수력발전댐.
조선인 강제징용자 3천 명 가운데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일부 유골만 발굴됐습니다.
<인터뷰> 윤정구(유골발굴 참가자) : "일본 정부가 (기록을) 내놓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한, 시민단체가 해결할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익들의 반대로 변변한 위령비도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4년 세워졌던 이 조선인 강제징용 추도비는 철거 위기, 나라현의 조선인 강제연행과 일본군 위안소 설명판은 사라졌습니다.
아베 정부 출범 이후 일본 우익의 `침략 역사 지우기' 움직임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홋카이도에서 KBS 뉴스 박재우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일제 강제징용 현장을 가다] 일 ‘침략 역사 지우기’
-
- 입력 2014-08-14 21:23:42
- 수정2014-08-14 22:46:32

<앵커 멘트>
광복절을 앞두고 강제징용 문제를 짚어보는 순서입니다.
일본 여러 곳에서 지금 일본 우익의 반대로 강제징용 피해자 추모비나 위령비가 세워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죽어서도 서러운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박재우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일본 최북단의 한 목장.
태평양전쟁 당시 비행장이었습니다.
활주로와 공군 부대를 만드는데 조선인 4천 명이 강제동원됐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던 것은 당시 전쟁물자 부족으로 콘크리트가 없어 이 넓은 활주로 바닥을 15cm 두께가 넘는 두꺼운 나무판자로 모두 깔았기 때문입니다.
중노동과 혹한에 시달리다 숨진 조선인들은 모두 숲속에 버려졌습니다.
유골 39구를 찾았지만 추모비 설치는 중단됐습니다.
<인터뷰> 채홍철(홋카이도 포럼 공동대표) : "일본 우익들이 지자체에 항의를 해서 건립이 일단 중지됐습니다."
1943년 완공된 수력발전댐.
조선인 강제징용자 3천 명 가운데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일부 유골만 발굴됐습니다.
<인터뷰> 윤정구(유골발굴 참가자) : "일본 정부가 (기록을) 내놓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한, 시민단체가 해결할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익들의 반대로 변변한 위령비도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4년 세워졌던 이 조선인 강제징용 추도비는 철거 위기, 나라현의 조선인 강제연행과 일본군 위안소 설명판은 사라졌습니다.
아베 정부 출범 이후 일본 우익의 `침략 역사 지우기' 움직임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홋카이도에서 KBS 뉴스 박재우입니다.
광복절을 앞두고 강제징용 문제를 짚어보는 순서입니다.
일본 여러 곳에서 지금 일본 우익의 반대로 강제징용 피해자 추모비나 위령비가 세워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죽어서도 서러운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박재우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일본 최북단의 한 목장.
태평양전쟁 당시 비행장이었습니다.
활주로와 공군 부대를 만드는데 조선인 4천 명이 강제동원됐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던 것은 당시 전쟁물자 부족으로 콘크리트가 없어 이 넓은 활주로 바닥을 15cm 두께가 넘는 두꺼운 나무판자로 모두 깔았기 때문입니다.
중노동과 혹한에 시달리다 숨진 조선인들은 모두 숲속에 버려졌습니다.
유골 39구를 찾았지만 추모비 설치는 중단됐습니다.
<인터뷰> 채홍철(홋카이도 포럼 공동대표) : "일본 우익들이 지자체에 항의를 해서 건립이 일단 중지됐습니다."
1943년 완공된 수력발전댐.
조선인 강제징용자 3천 명 가운데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일부 유골만 발굴됐습니다.
<인터뷰> 윤정구(유골발굴 참가자) : "일본 정부가 (기록을) 내놓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한, 시민단체가 해결할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익들의 반대로 변변한 위령비도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4년 세워졌던 이 조선인 강제징용 추도비는 철거 위기, 나라현의 조선인 강제연행과 일본군 위안소 설명판은 사라졌습니다.
아베 정부 출범 이후 일본 우익의 `침략 역사 지우기' 움직임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홋카이도에서 KBS 뉴스 박재우입니다.
-
-
박재우 기자 pjwoo@kbs.co.kr
박재우 기자의 기사 모음
-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