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의 눈] 분식회계로 깨진 ‘세계경영’의 꿈…미납 추징금 17조 원
입력 2019.12.10 (21:37)
수정 2019.12.10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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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30년 전, 이 책은 6달 만에 100만 부가 팔렸습니다.
이렇게 '세계 경영'은 김우중 전 회장의 상징이었습니다.
1970년대부터 미지의 땅 중남미와 아프리카로 향했고, 1990년대엔 공산 주의가 무너진 동유럽으로 진출했습니다.
그렇게 재계 순위 2위까지 올랐던 대우였지만, 결국 '대마불사'의 신화는 깨졌습니다.
IMF 사태 이후 이어진 역대 최대 규모의 부도, 무한 확장의 대가였습니다.
그리고 2005년, 6년 간의 해외 도피 끝에 돌아왔지만, 수십 조 원의 분식회계와 사기대출에 대한 처벌을 피할 순 없었습니다.
무너진 세계 경영의 신화, 박대기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대한뉴스/1976년 : "각종 기계와 기차 장비를 수출해온 대우실업도 3억 불 수출의 탑을 받았습니다."]
김우중 김우중 전 회장이 서른 살 때 설립한 대우는 불과 10여년 뒤 4대 재벌이 됐습니다.
별명 그대로 '일 중독자'였지만, 납북된 부친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스승이었단 점도 배경이 됐습니다.
중공업과 조선, 자동차까지, 부실기업을 잇따라 인수하며 대우의 덩치를 키워갔습니다.
큰 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란 말은 해외에서도 통했습니다.
[KBS 뉴스/1995년 : "이로써 대우는 폴란드 최대의 자동차 그룹이 됐습니다."]
대우의 성장과 함께 김 전 회장은 근면 성실한 한국인의 상징이 됐습니다.
[김우중/대우그룹 전 회장/1984년 : "우리 근로자들은 한 달에 2번 밖에 안 놀아요. 여러분 들으면 나를 비난할 지 모르겠지만 (한 달에) 4일 있는 일요일도 못 논다 이거야."]
위태롭게 쌓아올린 신화는 IMF 사태 직후 한 순간에 무너졌습니다.
계열사들이 잇따라 무너지면서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김우중/대우그룹 회장/1999년 4월 : "대우는 앞으로 자동차 산업에 전념한다는 원칙하에 여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업종만을 영위해 나가겠습니다."]
결국 대우그룹은 해체됐습니다.
[박상인/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박정희 재벌 체제의 명암을 보여준 사람이다. 과도한 차입경영이라든지 무리한 확장정책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줬다…."]
2006년, 김 전 회장은 징역 8년 6개월에 추징금 17조 9천억 원을 선고받았지만, 실제 집행된 건 892억 원, 0.5%에 불과합니다.
'샐러리맨의 신화'에서 '몰락한 경제인' 으로, 엇갈리는 평가 속에 김우중 전 회장은 소박한 마지막 길을 떠났습니다.
KBS 뉴스 박대기입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30년 전, 이 책은 6달 만에 100만 부가 팔렸습니다.
이렇게 '세계 경영'은 김우중 전 회장의 상징이었습니다.
1970년대부터 미지의 땅 중남미와 아프리카로 향했고, 1990년대엔 공산 주의가 무너진 동유럽으로 진출했습니다.
그렇게 재계 순위 2위까지 올랐던 대우였지만, 결국 '대마불사'의 신화는 깨졌습니다.
IMF 사태 이후 이어진 역대 최대 규모의 부도, 무한 확장의 대가였습니다.
그리고 2005년, 6년 간의 해외 도피 끝에 돌아왔지만, 수십 조 원의 분식회계와 사기대출에 대한 처벌을 피할 순 없었습니다.
무너진 세계 경영의 신화, 박대기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대한뉴스/1976년 : "각종 기계와 기차 장비를 수출해온 대우실업도 3억 불 수출의 탑을 받았습니다."]
김우중 김우중 전 회장이 서른 살 때 설립한 대우는 불과 10여년 뒤 4대 재벌이 됐습니다.
별명 그대로 '일 중독자'였지만, 납북된 부친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스승이었단 점도 배경이 됐습니다.
중공업과 조선, 자동차까지, 부실기업을 잇따라 인수하며 대우의 덩치를 키워갔습니다.
큰 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란 말은 해외에서도 통했습니다.
[KBS 뉴스/1995년 : "이로써 대우는 폴란드 최대의 자동차 그룹이 됐습니다."]
대우의 성장과 함께 김 전 회장은 근면 성실한 한국인의 상징이 됐습니다.
[김우중/대우그룹 전 회장/1984년 : "우리 근로자들은 한 달에 2번 밖에 안 놀아요. 여러분 들으면 나를 비난할 지 모르겠지만 (한 달에) 4일 있는 일요일도 못 논다 이거야."]
위태롭게 쌓아올린 신화는 IMF 사태 직후 한 순간에 무너졌습니다.
계열사들이 잇따라 무너지면서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김우중/대우그룹 회장/1999년 4월 : "대우는 앞으로 자동차 산업에 전념한다는 원칙하에 여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업종만을 영위해 나가겠습니다."]
결국 대우그룹은 해체됐습니다.
[박상인/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박정희 재벌 체제의 명암을 보여준 사람이다. 과도한 차입경영이라든지 무리한 확장정책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줬다…."]
2006년, 김 전 회장은 징역 8년 6개월에 추징금 17조 9천억 원을 선고받았지만, 실제 집행된 건 892억 원, 0.5%에 불과합니다.
'샐러리맨의 신화'에서 '몰락한 경제인' 으로, 엇갈리는 평가 속에 김우중 전 회장은 소박한 마지막 길을 떠났습니다.
KBS 뉴스 박대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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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12-10 21:4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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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30년 전, 이 책은 6달 만에 100만 부가 팔렸습니다.
이렇게 '세계 경영'은 김우중 전 회장의 상징이었습니다.
1970년대부터 미지의 땅 중남미와 아프리카로 향했고, 1990년대엔 공산 주의가 무너진 동유럽으로 진출했습니다.
그렇게 재계 순위 2위까지 올랐던 대우였지만, 결국 '대마불사'의 신화는 깨졌습니다.
IMF 사태 이후 이어진 역대 최대 규모의 부도, 무한 확장의 대가였습니다.
그리고 2005년, 6년 간의 해외 도피 끝에 돌아왔지만, 수십 조 원의 분식회계와 사기대출에 대한 처벌을 피할 순 없었습니다.
무너진 세계 경영의 신화, 박대기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대한뉴스/1976년 : "각종 기계와 기차 장비를 수출해온 대우실업도 3억 불 수출의 탑을 받았습니다."]
김우중 김우중 전 회장이 서른 살 때 설립한 대우는 불과 10여년 뒤 4대 재벌이 됐습니다.
별명 그대로 '일 중독자'였지만, 납북된 부친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스승이었단 점도 배경이 됐습니다.
중공업과 조선, 자동차까지, 부실기업을 잇따라 인수하며 대우의 덩치를 키워갔습니다.
큰 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란 말은 해외에서도 통했습니다.
[KBS 뉴스/1995년 : "이로써 대우는 폴란드 최대의 자동차 그룹이 됐습니다."]
대우의 성장과 함께 김 전 회장은 근면 성실한 한국인의 상징이 됐습니다.
[김우중/대우그룹 전 회장/1984년 : "우리 근로자들은 한 달에 2번 밖에 안 놀아요. 여러분 들으면 나를 비난할 지 모르겠지만 (한 달에) 4일 있는 일요일도 못 논다 이거야."]
위태롭게 쌓아올린 신화는 IMF 사태 직후 한 순간에 무너졌습니다.
계열사들이 잇따라 무너지면서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김우중/대우그룹 회장/1999년 4월 : "대우는 앞으로 자동차 산업에 전념한다는 원칙하에 여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업종만을 영위해 나가겠습니다."]
결국 대우그룹은 해체됐습니다.
[박상인/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박정희 재벌 체제의 명암을 보여준 사람이다. 과도한 차입경영이라든지 무리한 확장정책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줬다…."]
2006년, 김 전 회장은 징역 8년 6개월에 추징금 17조 9천억 원을 선고받았지만, 실제 집행된 건 892억 원, 0.5%에 불과합니다.
'샐러리맨의 신화'에서 '몰락한 경제인' 으로, 엇갈리는 평가 속에 김우중 전 회장은 소박한 마지막 길을 떠났습니다.
KBS 뉴스 박대기입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30년 전, 이 책은 6달 만에 100만 부가 팔렸습니다.
이렇게 '세계 경영'은 김우중 전 회장의 상징이었습니다.
1970년대부터 미지의 땅 중남미와 아프리카로 향했고, 1990년대엔 공산 주의가 무너진 동유럽으로 진출했습니다.
그렇게 재계 순위 2위까지 올랐던 대우였지만, 결국 '대마불사'의 신화는 깨졌습니다.
IMF 사태 이후 이어진 역대 최대 규모의 부도, 무한 확장의 대가였습니다.
그리고 2005년, 6년 간의 해외 도피 끝에 돌아왔지만, 수십 조 원의 분식회계와 사기대출에 대한 처벌을 피할 순 없었습니다.
무너진 세계 경영의 신화, 박대기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대한뉴스/1976년 : "각종 기계와 기차 장비를 수출해온 대우실업도 3억 불 수출의 탑을 받았습니다."]
김우중 김우중 전 회장이 서른 살 때 설립한 대우는 불과 10여년 뒤 4대 재벌이 됐습니다.
별명 그대로 '일 중독자'였지만, 납북된 부친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스승이었단 점도 배경이 됐습니다.
중공업과 조선, 자동차까지, 부실기업을 잇따라 인수하며 대우의 덩치를 키워갔습니다.
큰 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란 말은 해외에서도 통했습니다.
[KBS 뉴스/1995년 : "이로써 대우는 폴란드 최대의 자동차 그룹이 됐습니다."]
대우의 성장과 함께 김 전 회장은 근면 성실한 한국인의 상징이 됐습니다.
[김우중/대우그룹 전 회장/1984년 : "우리 근로자들은 한 달에 2번 밖에 안 놀아요. 여러분 들으면 나를 비난할 지 모르겠지만 (한 달에) 4일 있는 일요일도 못 논다 이거야."]
위태롭게 쌓아올린 신화는 IMF 사태 직후 한 순간에 무너졌습니다.
계열사들이 잇따라 무너지면서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김우중/대우그룹 회장/1999년 4월 : "대우는 앞으로 자동차 산업에 전념한다는 원칙하에 여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업종만을 영위해 나가겠습니다."]
결국 대우그룹은 해체됐습니다.
[박상인/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박정희 재벌 체제의 명암을 보여준 사람이다. 과도한 차입경영이라든지 무리한 확장정책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줬다…."]
2006년, 김 전 회장은 징역 8년 6개월에 추징금 17조 9천억 원을 선고받았지만, 실제 집행된 건 892억 원, 0.5%에 불과합니다.
'샐러리맨의 신화'에서 '몰락한 경제인' 으로, 엇갈리는 평가 속에 김우중 전 회장은 소박한 마지막 길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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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기 기자 waiti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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