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불지른 ‘기생충’ 논란…시상식 현장의 공기는?
입력 2020.02.23 (09:01)
수정 2020.02.24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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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영화 '기생충'을 콕 찍어 언급했습니다. 현지시간으로 21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 열린 대선 유세현장입니다. 칭찬은 아닙니다. "그 빌어먹을(Freaking) 영화로 아카데미상을 탔다"라고 말했습니다.
20일 콜로라도주에선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이 얼마나 나빴지? 승자는 한국에서 온 영화"라며 "더욱이 올해 최고의 영화상을 주나? 잘 됐나? 모르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연이틀 딴지를 건겁니다. 둘 다 '기생충'이 아카데미 92년 역사상 처음으로 '작품상'을 받은 외국어 영화임을 의식한 발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에 민주당 전국위원회가 트위터로 대응했습니다. "'기생충'은 갑부들이 서민계층의 투쟁을 얼마나 의식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영화로, 두 시간 동안 자막을 읽어야 한다. 물론 트럼프는 그것을 싫어한다"고 적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해 온 CNN은 '근본적으로 반 미국적인 도널드 트럼프의 기생충 비평'이라는 기사를 통해 "미국이 근본적으로 '용광로'라는 점을 기억하라"며 그가 미국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 정치판에서까지 논란이 된 '기생충'. 사실,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언론 간에 설전에서 나온 분위기는 아카데미 시상식 현장 취재를 하면서도 느껴졌습니다.
'기생충'에 대해서 정리하면 아시아에서 만든, 그래서 자막을 읽어야 하는, 빈부 격차 문제를 다룬 불편한 이야기입니다. 오가다 만난 외신기자들도 공통적으로 짚은 부분이었습니다. 그걸 미국 사회가 어느 정도로 받아 들일 수 있는가가 수상의 관건처럼 보였습니다.
봉준호 감독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봉 감독은 지난해 10월 '기생충'의 미국 개봉을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아카데미는 '로컬' 시상식"이라고 했었죠. 올해 1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선 "1인치 자막의 장벽"을 언급했습니다.
"혁명을 하려는 것이냐"라는 질문을 받는가 하면, "미국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심장 같은 나라이니 논쟁적이고 뜨거운 반응이 있을 수밖에 없겠다"라는 답변도 했었습니다.
이 중에 '빈부 격차'라는 영화의 주제는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역시 후보에 올랐던 영화 '조커'에서 나타났듯이 미국적인 이슈이기도 했거든요.
이 질문은 제가 할리우드 현지에서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 이후에도 가장 많이 들었습니다. 저도 딱히 대답은 생각 안 나더군요. "웃다가 위태위태한 순간의 스릴이 이어지다 어느 순간 메시지가 턱 하니 다가오니까?"
미국 반응은 어땠을까요? 현지에서 만난 외신기자들과 영화팬들은 낯선 세련됨을 들었습니다.
'오리지널 하우스키퍼'라고 불리는 '문광'이 다시 집으로 찾아오는 장면에서 숨겨진 지하실에 제3의 가족의 존재가 드러나는 구성의 참신함과 함께 빈부 격차를 세련되게 풀어냈다는 겁니다. 반지하로 대표되는 영화적 배경의 독특함도 있고요. '기생충'에선 부자는 악하지 않고, 가난한 자는 착하지 않습니다. 각자의 상황이 있을 뿐이죠.
아카데미 시상식은 심사위원 평가제인 칸 영화제와 달리 회원 8천여 명의 비밀투표로 각 부문 수상작이 결정됩니다. 그만큼 수상을 염두에 둔다면 6개월 정도 기간을 잡아서 홍보를 펼쳐 표심을 잡아야 합니다.
'아카데미 캠페인'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적게 잡아도 100억 원 이상의 비용이 듭니다. 자금력에서 열세였던 '기생충'은 봉 감독이 600차례 이상 현지 인터뷰와 100차례 정도의 '관객과의 만남'을 하고, 송강호 씨는 그 과정에서 쌍코피가 터졌다는 일화도 공개됐습니다.
현지시간으로 2월6일 LA에 도착했을 때 영화의 완성도에 대해선 거의 이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회원들 투표는 이미 2월4일에 끝났고, 남은 건 시상식의 화려한 쇼에서 밀봉됐던 결과를 발표하는 것 뿐이었죠.
제작사인 CJ는 캠페인 시작 단계부터 국제영화상보다 더 높은 목표를 설정했다고 밝혔습니다. 가장 유력한 건 각본상이라고 전망됐습니다. 외신 기자들과 영화 관객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제한적으로 노출됐던 주최 측 행사에서도 온통 기생충의 각본이 관심사였습니다.
주최 측 사회자는 봉준호 감독이 대학생 때 과외를 했던 경험에 대해 묻기도 하고, 봉 감독은 "맞다. 그래도 사람은 죽인 적이 없었다"라고 재치있게 넘기기도 했습니다.
'기생충'이 이 정도까지 분위기를 타고 인기가 오르면서 다른 국제영화상 후보 감독들의 부러움을 받았습니다. 감독들의 언론 공개행사에서 이곳저곳에서 '기생충'이라는 단어가 들렸거든요.
잘 들어보니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2003년 <그녀에게>로 외국어영화상을 탔던 스페인의 거장 알모도바르 감독은 "기생충처럼 좋은 외국어 영화들이 더 많이 소개되어야 한다"였고요. 아카데미가 '로컬'과 '자막의 장벽'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폴란드 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의 얀 코마사 감독은 '기생충'의 홍보 활동을 부러워했습니다. 어디를 가도 화제였습니다.
결국 최고의 영예인 작품상과 감독상은 양강 구도로 전망됐습니다. '기생충'의 강력한 경쟁자는 샘 멘데스 감독의 '1917'이었습니다. 현지에선 무난한 선택이라고 짚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에서 전장의 한 일화를 훌륭한 촬영 기술로 담담하게 풀어나간 수작이죠.
굳이 미국 정치로 비유하자면 '1917'은 2008년 대선의 존 매케인 같은 느낌이라면, '기생충'은 힐러리나 오바마로 보이는데, 각종 예측 사이트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참신함을 보자면 오바마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그러나 호평을 받고도 수상하지 못한 영화는 많습니다. 시상식 취재 현장에서 만난 AFP 같은 비 영어권 언론 기자들은 "아카데미가 바뀔 때가 됐다"라고들 말하지만, 표심은 알 수 없는 부분이었죠.
문제는 한국어와 영어 자막입니다. 번역이 훌륭하다곤 했지만, 뉴욕과 LA, 샌프란시스코 등 해안가 국제도시를 제외한 상당수의 미국인들은 미국 바깥의 세상을 굳이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익명의 한 할리우드 여배우가 외국인들이 판치는 아카데미라는 트럼프와 비슷한 이유를 들며 '기생충'에 투표하지 않았다는 기사도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시상식이 시작됐고, 정신없이 바깥에서 생방송으로 소식을 전하는 동안 모두가 아는 놀라운 '작품상' 수상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방송 중이던 저는 순식간에 외국 기자들의 주목을 받게 됐죠.
아카데미는 안정보다는 파격에 손을 들어줬습니다. '로컬'보다는 '인터내셔널'을 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 시대에 특히 문화 콘텐츠는 BTS에서 볼 수 있듯이 국경의 벽이 없어지는 추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생충' 발언은 할리우드 국경에 장벽을 다시 세우고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자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본래부터 미 공화당과 특히 '이단아'인 트럼프 자신에게 부정적인 미 영화인들을 겨냥한 것으로도 보이는데요. 예전부터 할리우드의 표심은 트럼프에게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이번 아카데미 영화제 소감을 통해 대놓고 트럼프를 겨냥한 배우도 있습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로 남우조연상을 받은 브래드 피트입니다.
그는 "수상 소감을 위해 주어진 시간이 45초라고 한다. 적어도 미 상원이 존 볼턴(전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에게 준 시간보다 45초나 많다"고 말했는데요.
트럼프의 측근 중에 존 볼턴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대표적 대북 강경파인데요. 트럼프가 지난해 9월 트위터로 돌연 볼턴을 해고해버립니다. 볼턴이 최근 민주당이 추진한 트럼프 탄핵심판에서 증인으로 채택되느냐를 놓고 미 상원에서 줄다리기가 벌어지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공화당이 결국 저지해냅니다.
맥락은 복잡하지만 브래드 피트는 "나는 정말 트럼프가 싫다" 정도로 요약해 이해하시면 됩니다. 트럼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그의 팬이 아니다. 그는 일어나서 잘난 체하는 말을 했다. 그는 잘난 체하는 인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트럼프 VS 브래드 피트·'기생충'이 된 거죠. 아시다시피 브래드 피트는 송강호와 봉준호 감독과 미국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괜한 시비로 '기생충'에 대한 전 세계인의 관심도가 더욱 커지는 것을 물론 '기생충'의 팬덤은 더욱 커지는 모양새입니다.
20일 콜로라도주에선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이 얼마나 나빴지? 승자는 한국에서 온 영화"라며 "더욱이 올해 최고의 영화상을 주나? 잘 됐나? 모르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연이틀 딴지를 건겁니다. 둘 다 '기생충'이 아카데미 92년 역사상 처음으로 '작품상'을 받은 외국어 영화임을 의식한 발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에 민주당 전국위원회가 트위터로 대응했습니다. "'기생충'은 갑부들이 서민계층의 투쟁을 얼마나 의식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영화로, 두 시간 동안 자막을 읽어야 한다. 물론 트럼프는 그것을 싫어한다"고 적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해 온 CNN은 '근본적으로 반 미국적인 도널드 트럼프의 기생충 비평'이라는 기사를 통해 "미국이 근본적으로 '용광로'라는 점을 기억하라"며 그가 미국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 정치판에서까지 논란이 된 '기생충'. 사실,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언론 간에 설전에서 나온 분위기는 아카데미 시상식 현장 취재를 하면서도 느껴졌습니다.
'기생충'에 대해서 정리하면 아시아에서 만든, 그래서 자막을 읽어야 하는, 빈부 격차 문제를 다룬 불편한 이야기입니다. 오가다 만난 외신기자들도 공통적으로 짚은 부분이었습니다. 그걸 미국 사회가 어느 정도로 받아 들일 수 있는가가 수상의 관건처럼 보였습니다.
봉준호 감독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봉 감독은 지난해 10월 '기생충'의 미국 개봉을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아카데미는 '로컬' 시상식"이라고 했었죠. 올해 1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선 "1인치 자막의 장벽"을 언급했습니다.
"혁명을 하려는 것이냐"라는 질문을 받는가 하면, "미국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심장 같은 나라이니 논쟁적이고 뜨거운 반응이 있을 수밖에 없겠다"라는 답변도 했었습니다.
이 중에 '빈부 격차'라는 영화의 주제는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역시 후보에 올랐던 영화 '조커'에서 나타났듯이 미국적인 이슈이기도 했거든요.
"기생충은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 불평등을 묘사하는 영화인데 한국 관객들이 열광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시상식 뒤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 제작진의 서울 기자회견에서 CNN 서울 특파원인 폴라 핸콕이 던진 질문입니다. 봉 감독은 답을 평론의 영역으로 넘겼죠. 다만 봉 감독이 이런 말은 하더군요.“당의정 없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솔직히 그리고 싶었죠”
이 질문은 제가 할리우드 현지에서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 이후에도 가장 많이 들었습니다. 저도 딱히 대답은 생각 안 나더군요. "웃다가 위태위태한 순간의 스릴이 이어지다 어느 순간 메시지가 턱 하니 다가오니까?"
미국 반응은 어땠을까요? 현지에서 만난 외신기자들과 영화팬들은 낯선 세련됨을 들었습니다.
'오리지널 하우스키퍼'라고 불리는 '문광'이 다시 집으로 찾아오는 장면에서 숨겨진 지하실에 제3의 가족의 존재가 드러나는 구성의 참신함과 함께 빈부 격차를 세련되게 풀어냈다는 겁니다. 반지하로 대표되는 영화적 배경의 독특함도 있고요. '기생충'에선 부자는 악하지 않고, 가난한 자는 착하지 않습니다. 각자의 상황이 있을 뿐이죠.
아카데미 시상식은 심사위원 평가제인 칸 영화제와 달리 회원 8천여 명의 비밀투표로 각 부문 수상작이 결정됩니다. 그만큼 수상을 염두에 둔다면 6개월 정도 기간을 잡아서 홍보를 펼쳐 표심을 잡아야 합니다.
'아카데미 캠페인'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적게 잡아도 100억 원 이상의 비용이 듭니다. 자금력에서 열세였던 '기생충'은 봉 감독이 600차례 이상 현지 인터뷰와 100차례 정도의 '관객과의 만남'을 하고, 송강호 씨는 그 과정에서 쌍코피가 터졌다는 일화도 공개됐습니다.
현지시간으로 2월6일 LA에 도착했을 때 영화의 완성도에 대해선 거의 이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회원들 투표는 이미 2월4일에 끝났고, 남은 건 시상식의 화려한 쇼에서 밀봉됐던 결과를 발표하는 것 뿐이었죠.
제작사인 CJ는 캠페인 시작 단계부터 국제영화상보다 더 높은 목표를 설정했다고 밝혔습니다. 가장 유력한 건 각본상이라고 전망됐습니다. 외신 기자들과 영화 관객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제한적으로 노출됐던 주최 측 행사에서도 온통 기생충의 각본이 관심사였습니다.
주최 측 사회자는 봉준호 감독이 대학생 때 과외를 했던 경험에 대해 묻기도 하고, 봉 감독은 "맞다. 그래도 사람은 죽인 적이 없었다"라고 재치있게 넘기기도 했습니다.
'기생충'이 이 정도까지 분위기를 타고 인기가 오르면서 다른 국제영화상 후보 감독들의 부러움을 받았습니다. 감독들의 언론 공개행사에서 이곳저곳에서 '기생충'이라는 단어가 들렸거든요.
잘 들어보니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2003년 <그녀에게>로 외국어영화상을 탔던 스페인의 거장 알모도바르 감독은 "기생충처럼 좋은 외국어 영화들이 더 많이 소개되어야 한다"였고요. 아카데미가 '로컬'과 '자막의 장벽'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폴란드 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의 얀 코마사 감독은 '기생충'의 홍보 활동을 부러워했습니다. 어디를 가도 화제였습니다.
결국 최고의 영예인 작품상과 감독상은 양강 구도로 전망됐습니다. '기생충'의 강력한 경쟁자는 샘 멘데스 감독의 '1917'이었습니다. 현지에선 무난한 선택이라고 짚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에서 전장의 한 일화를 훌륭한 촬영 기술로 담담하게 풀어나간 수작이죠.
굳이 미국 정치로 비유하자면 '1917'은 2008년 대선의 존 매케인 같은 느낌이라면, '기생충'은 힐러리나 오바마로 보이는데, 각종 예측 사이트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참신함을 보자면 오바마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그러나 호평을 받고도 수상하지 못한 영화는 많습니다. 시상식 취재 현장에서 만난 AFP 같은 비 영어권 언론 기자들은 "아카데미가 바뀔 때가 됐다"라고들 말하지만, 표심은 알 수 없는 부분이었죠.
문제는 한국어와 영어 자막입니다. 번역이 훌륭하다곤 했지만, 뉴욕과 LA, 샌프란시스코 등 해안가 국제도시를 제외한 상당수의 미국인들은 미국 바깥의 세상을 굳이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익명의 한 할리우드 여배우가 외국인들이 판치는 아카데미라는 트럼프와 비슷한 이유를 들며 '기생충'에 투표하지 않았다는 기사도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시상식이 시작됐고, 정신없이 바깥에서 생방송으로 소식을 전하는 동안 모두가 아는 놀라운 '작품상' 수상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방송 중이던 저는 순식간에 외국 기자들의 주목을 받게 됐죠.
아카데미는 안정보다는 파격에 손을 들어줬습니다. '로컬'보다는 '인터내셔널'을 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 시대에 특히 문화 콘텐츠는 BTS에서 볼 수 있듯이 국경의 벽이 없어지는 추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생충' 발언은 할리우드 국경에 장벽을 다시 세우고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자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본래부터 미 공화당과 특히 '이단아'인 트럼프 자신에게 부정적인 미 영화인들을 겨냥한 것으로도 보이는데요. 예전부터 할리우드의 표심은 트럼프에게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이번 아카데미 영화제 소감을 통해 대놓고 트럼프를 겨냥한 배우도 있습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로 남우조연상을 받은 브래드 피트입니다.
그는 "수상 소감을 위해 주어진 시간이 45초라고 한다. 적어도 미 상원이 존 볼턴(전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에게 준 시간보다 45초나 많다"고 말했는데요.
트럼프의 측근 중에 존 볼턴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대표적 대북 강경파인데요. 트럼프가 지난해 9월 트위터로 돌연 볼턴을 해고해버립니다. 볼턴이 최근 민주당이 추진한 트럼프 탄핵심판에서 증인으로 채택되느냐를 놓고 미 상원에서 줄다리기가 벌어지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공화당이 결국 저지해냅니다.
맥락은 복잡하지만 브래드 피트는 "나는 정말 트럼프가 싫다" 정도로 요약해 이해하시면 됩니다. 트럼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그의 팬이 아니다. 그는 일어나서 잘난 체하는 말을 했다. 그는 잘난 체하는 인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트럼프 VS 브래드 피트·'기생충'이 된 거죠. 아시다시피 브래드 피트는 송강호와 봉준호 감독과 미국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괜한 시비로 '기생충'에 대한 전 세계인의 관심도가 더욱 커지는 것을 물론 '기생충'의 팬덤은 더욱 커지는 모양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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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가 불지른 ‘기생충’ 논란…시상식 현장의 공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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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0-02-23 09:01:14
- 수정2020-02-24 09:42:44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영화 '기생충'을 콕 찍어 언급했습니다. 현지시간으로 21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 열린 대선 유세현장입니다. 칭찬은 아닙니다. "그 빌어먹을(Freaking) 영화로 아카데미상을 탔다"라고 말했습니다.
20일 콜로라도주에선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이 얼마나 나빴지? 승자는 한국에서 온 영화"라며 "더욱이 올해 최고의 영화상을 주나? 잘 됐나? 모르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연이틀 딴지를 건겁니다. 둘 다 '기생충'이 아카데미 92년 역사상 처음으로 '작품상'을 받은 외국어 영화임을 의식한 발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에 민주당 전국위원회가 트위터로 대응했습니다. "'기생충'은 갑부들이 서민계층의 투쟁을 얼마나 의식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영화로, 두 시간 동안 자막을 읽어야 한다. 물론 트럼프는 그것을 싫어한다"고 적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해 온 CNN은 '근본적으로 반 미국적인 도널드 트럼프의 기생충 비평'이라는 기사를 통해 "미국이 근본적으로 '용광로'라는 점을 기억하라"며 그가 미국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 정치판에서까지 논란이 된 '기생충'. 사실,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언론 간에 설전에서 나온 분위기는 아카데미 시상식 현장 취재를 하면서도 느껴졌습니다.
'기생충'에 대해서 정리하면 아시아에서 만든, 그래서 자막을 읽어야 하는, 빈부 격차 문제를 다룬 불편한 이야기입니다. 오가다 만난 외신기자들도 공통적으로 짚은 부분이었습니다. 그걸 미국 사회가 어느 정도로 받아 들일 수 있는가가 수상의 관건처럼 보였습니다.
봉준호 감독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봉 감독은 지난해 10월 '기생충'의 미국 개봉을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아카데미는 '로컬' 시상식"이라고 했었죠. 올해 1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선 "1인치 자막의 장벽"을 언급했습니다.
"혁명을 하려는 것이냐"라는 질문을 받는가 하면, "미국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심장 같은 나라이니 논쟁적이고 뜨거운 반응이 있을 수밖에 없겠다"라는 답변도 했었습니다.
이 중에 '빈부 격차'라는 영화의 주제는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역시 후보에 올랐던 영화 '조커'에서 나타났듯이 미국적인 이슈이기도 했거든요.
"기생충은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 불평등을 묘사하는 영화인데 한국 관객들이 열광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시상식 뒤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 제작진의 서울 기자회견에서 CNN 서울 특파원인 폴라 핸콕이 던진 질문입니다. 봉 감독은 답을 평론의 영역으로 넘겼죠. 다만 봉 감독이 이런 말은 하더군요.“당의정 없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솔직히 그리고 싶었죠”
이 질문은 제가 할리우드 현지에서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 이후에도 가장 많이 들었습니다. 저도 딱히 대답은 생각 안 나더군요. "웃다가 위태위태한 순간의 스릴이 이어지다 어느 순간 메시지가 턱 하니 다가오니까?"
미국 반응은 어땠을까요? 현지에서 만난 외신기자들과 영화팬들은 낯선 세련됨을 들었습니다.
'오리지널 하우스키퍼'라고 불리는 '문광'이 다시 집으로 찾아오는 장면에서 숨겨진 지하실에 제3의 가족의 존재가 드러나는 구성의 참신함과 함께 빈부 격차를 세련되게 풀어냈다는 겁니다. 반지하로 대표되는 영화적 배경의 독특함도 있고요. '기생충'에선 부자는 악하지 않고, 가난한 자는 착하지 않습니다. 각자의 상황이 있을 뿐이죠.
아카데미 시상식은 심사위원 평가제인 칸 영화제와 달리 회원 8천여 명의 비밀투표로 각 부문 수상작이 결정됩니다. 그만큼 수상을 염두에 둔다면 6개월 정도 기간을 잡아서 홍보를 펼쳐 표심을 잡아야 합니다.
'아카데미 캠페인'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적게 잡아도 100억 원 이상의 비용이 듭니다. 자금력에서 열세였던 '기생충'은 봉 감독이 600차례 이상 현지 인터뷰와 100차례 정도의 '관객과의 만남'을 하고, 송강호 씨는 그 과정에서 쌍코피가 터졌다는 일화도 공개됐습니다.
현지시간으로 2월6일 LA에 도착했을 때 영화의 완성도에 대해선 거의 이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회원들 투표는 이미 2월4일에 끝났고, 남은 건 시상식의 화려한 쇼에서 밀봉됐던 결과를 발표하는 것 뿐이었죠.
제작사인 CJ는 캠페인 시작 단계부터 국제영화상보다 더 높은 목표를 설정했다고 밝혔습니다. 가장 유력한 건 각본상이라고 전망됐습니다. 외신 기자들과 영화 관객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제한적으로 노출됐던 주최 측 행사에서도 온통 기생충의 각본이 관심사였습니다.
주최 측 사회자는 봉준호 감독이 대학생 때 과외를 했던 경험에 대해 묻기도 하고, 봉 감독은 "맞다. 그래도 사람은 죽인 적이 없었다"라고 재치있게 넘기기도 했습니다.
'기생충'이 이 정도까지 분위기를 타고 인기가 오르면서 다른 국제영화상 후보 감독들의 부러움을 받았습니다. 감독들의 언론 공개행사에서 이곳저곳에서 '기생충'이라는 단어가 들렸거든요.
잘 들어보니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2003년 <그녀에게>로 외국어영화상을 탔던 스페인의 거장 알모도바르 감독은 "기생충처럼 좋은 외국어 영화들이 더 많이 소개되어야 한다"였고요. 아카데미가 '로컬'과 '자막의 장벽'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폴란드 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의 얀 코마사 감독은 '기생충'의 홍보 활동을 부러워했습니다. 어디를 가도 화제였습니다.
결국 최고의 영예인 작품상과 감독상은 양강 구도로 전망됐습니다. '기생충'의 강력한 경쟁자는 샘 멘데스 감독의 '1917'이었습니다. 현지에선 무난한 선택이라고 짚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에서 전장의 한 일화를 훌륭한 촬영 기술로 담담하게 풀어나간 수작이죠.
굳이 미국 정치로 비유하자면 '1917'은 2008년 대선의 존 매케인 같은 느낌이라면, '기생충'은 힐러리나 오바마로 보이는데, 각종 예측 사이트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참신함을 보자면 오바마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그러나 호평을 받고도 수상하지 못한 영화는 많습니다. 시상식 취재 현장에서 만난 AFP 같은 비 영어권 언론 기자들은 "아카데미가 바뀔 때가 됐다"라고들 말하지만, 표심은 알 수 없는 부분이었죠.
문제는 한국어와 영어 자막입니다. 번역이 훌륭하다곤 했지만, 뉴욕과 LA, 샌프란시스코 등 해안가 국제도시를 제외한 상당수의 미국인들은 미국 바깥의 세상을 굳이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익명의 한 할리우드 여배우가 외국인들이 판치는 아카데미라는 트럼프와 비슷한 이유를 들며 '기생충'에 투표하지 않았다는 기사도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시상식이 시작됐고, 정신없이 바깥에서 생방송으로 소식을 전하는 동안 모두가 아는 놀라운 '작품상' 수상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방송 중이던 저는 순식간에 외국 기자들의 주목을 받게 됐죠.
아카데미는 안정보다는 파격에 손을 들어줬습니다. '로컬'보다는 '인터내셔널'을 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 시대에 특히 문화 콘텐츠는 BTS에서 볼 수 있듯이 국경의 벽이 없어지는 추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생충' 발언은 할리우드 국경에 장벽을 다시 세우고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자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본래부터 미 공화당과 특히 '이단아'인 트럼프 자신에게 부정적인 미 영화인들을 겨냥한 것으로도 보이는데요. 예전부터 할리우드의 표심은 트럼프에게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이번 아카데미 영화제 소감을 통해 대놓고 트럼프를 겨냥한 배우도 있습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로 남우조연상을 받은 브래드 피트입니다.
그는 "수상 소감을 위해 주어진 시간이 45초라고 한다. 적어도 미 상원이 존 볼턴(전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에게 준 시간보다 45초나 많다"고 말했는데요.
트럼프의 측근 중에 존 볼턴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대표적 대북 강경파인데요. 트럼프가 지난해 9월 트위터로 돌연 볼턴을 해고해버립니다. 볼턴이 최근 민주당이 추진한 트럼프 탄핵심판에서 증인으로 채택되느냐를 놓고 미 상원에서 줄다리기가 벌어지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공화당이 결국 저지해냅니다.
맥락은 복잡하지만 브래드 피트는 "나는 정말 트럼프가 싫다" 정도로 요약해 이해하시면 됩니다. 트럼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그의 팬이 아니다. 그는 일어나서 잘난 체하는 말을 했다. 그는 잘난 체하는 인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트럼프 VS 브래드 피트·'기생충'이 된 거죠. 아시다시피 브래드 피트는 송강호와 봉준호 감독과 미국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괜한 시비로 '기생충'에 대한 전 세계인의 관심도가 더욱 커지는 것을 물론 '기생충'의 팬덤은 더욱 커지는 모양새입니다.
20일 콜로라도주에선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이 얼마나 나빴지? 승자는 한국에서 온 영화"라며 "더욱이 올해 최고의 영화상을 주나? 잘 됐나? 모르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연이틀 딴지를 건겁니다. 둘 다 '기생충'이 아카데미 92년 역사상 처음으로 '작품상'을 받은 외국어 영화임을 의식한 발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에 민주당 전국위원회가 트위터로 대응했습니다. "'기생충'은 갑부들이 서민계층의 투쟁을 얼마나 의식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영화로, 두 시간 동안 자막을 읽어야 한다. 물론 트럼프는 그것을 싫어한다"고 적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해 온 CNN은 '근본적으로 반 미국적인 도널드 트럼프의 기생충 비평'이라는 기사를 통해 "미국이 근본적으로 '용광로'라는 점을 기억하라"며 그가 미국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 정치판에서까지 논란이 된 '기생충'. 사실,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언론 간에 설전에서 나온 분위기는 아카데미 시상식 현장 취재를 하면서도 느껴졌습니다.
'기생충'에 대해서 정리하면 아시아에서 만든, 그래서 자막을 읽어야 하는, 빈부 격차 문제를 다룬 불편한 이야기입니다. 오가다 만난 외신기자들도 공통적으로 짚은 부분이었습니다. 그걸 미국 사회가 어느 정도로 받아 들일 수 있는가가 수상의 관건처럼 보였습니다.
봉준호 감독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봉 감독은 지난해 10월 '기생충'의 미국 개봉을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아카데미는 '로컬' 시상식"이라고 했었죠. 올해 1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선 "1인치 자막의 장벽"을 언급했습니다.
"혁명을 하려는 것이냐"라는 질문을 받는가 하면, "미국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심장 같은 나라이니 논쟁적이고 뜨거운 반응이 있을 수밖에 없겠다"라는 답변도 했었습니다.
이 중에 '빈부 격차'라는 영화의 주제는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역시 후보에 올랐던 영화 '조커'에서 나타났듯이 미국적인 이슈이기도 했거든요.
"기생충은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 불평등을 묘사하는 영화인데 한국 관객들이 열광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시상식 뒤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 제작진의 서울 기자회견에서 CNN 서울 특파원인 폴라 핸콕이 던진 질문입니다. 봉 감독은 답을 평론의 영역으로 넘겼죠. 다만 봉 감독이 이런 말은 하더군요.“당의정 없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솔직히 그리고 싶었죠”
이 질문은 제가 할리우드 현지에서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 이후에도 가장 많이 들었습니다. 저도 딱히 대답은 생각 안 나더군요. "웃다가 위태위태한 순간의 스릴이 이어지다 어느 순간 메시지가 턱 하니 다가오니까?"
미국 반응은 어땠을까요? 현지에서 만난 외신기자들과 영화팬들은 낯선 세련됨을 들었습니다.
'오리지널 하우스키퍼'라고 불리는 '문광'이 다시 집으로 찾아오는 장면에서 숨겨진 지하실에 제3의 가족의 존재가 드러나는 구성의 참신함과 함께 빈부 격차를 세련되게 풀어냈다는 겁니다. 반지하로 대표되는 영화적 배경의 독특함도 있고요. '기생충'에선 부자는 악하지 않고, 가난한 자는 착하지 않습니다. 각자의 상황이 있을 뿐이죠.
아카데미 시상식은 심사위원 평가제인 칸 영화제와 달리 회원 8천여 명의 비밀투표로 각 부문 수상작이 결정됩니다. 그만큼 수상을 염두에 둔다면 6개월 정도 기간을 잡아서 홍보를 펼쳐 표심을 잡아야 합니다.
'아카데미 캠페인'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적게 잡아도 100억 원 이상의 비용이 듭니다. 자금력에서 열세였던 '기생충'은 봉 감독이 600차례 이상 현지 인터뷰와 100차례 정도의 '관객과의 만남'을 하고, 송강호 씨는 그 과정에서 쌍코피가 터졌다는 일화도 공개됐습니다.
현지시간으로 2월6일 LA에 도착했을 때 영화의 완성도에 대해선 거의 이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회원들 투표는 이미 2월4일에 끝났고, 남은 건 시상식의 화려한 쇼에서 밀봉됐던 결과를 발표하는 것 뿐이었죠.
제작사인 CJ는 캠페인 시작 단계부터 국제영화상보다 더 높은 목표를 설정했다고 밝혔습니다. 가장 유력한 건 각본상이라고 전망됐습니다. 외신 기자들과 영화 관객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제한적으로 노출됐던 주최 측 행사에서도 온통 기생충의 각본이 관심사였습니다.
주최 측 사회자는 봉준호 감독이 대학생 때 과외를 했던 경험에 대해 묻기도 하고, 봉 감독은 "맞다. 그래도 사람은 죽인 적이 없었다"라고 재치있게 넘기기도 했습니다.
'기생충'이 이 정도까지 분위기를 타고 인기가 오르면서 다른 국제영화상 후보 감독들의 부러움을 받았습니다. 감독들의 언론 공개행사에서 이곳저곳에서 '기생충'이라는 단어가 들렸거든요.
잘 들어보니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2003년 <그녀에게>로 외국어영화상을 탔던 스페인의 거장 알모도바르 감독은 "기생충처럼 좋은 외국어 영화들이 더 많이 소개되어야 한다"였고요. 아카데미가 '로컬'과 '자막의 장벽'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폴란드 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의 얀 코마사 감독은 '기생충'의 홍보 활동을 부러워했습니다. 어디를 가도 화제였습니다.
결국 최고의 영예인 작품상과 감독상은 양강 구도로 전망됐습니다. '기생충'의 강력한 경쟁자는 샘 멘데스 감독의 '1917'이었습니다. 현지에선 무난한 선택이라고 짚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에서 전장의 한 일화를 훌륭한 촬영 기술로 담담하게 풀어나간 수작이죠.
굳이 미국 정치로 비유하자면 '1917'은 2008년 대선의 존 매케인 같은 느낌이라면, '기생충'은 힐러리나 오바마로 보이는데, 각종 예측 사이트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참신함을 보자면 오바마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그러나 호평을 받고도 수상하지 못한 영화는 많습니다. 시상식 취재 현장에서 만난 AFP 같은 비 영어권 언론 기자들은 "아카데미가 바뀔 때가 됐다"라고들 말하지만, 표심은 알 수 없는 부분이었죠.
문제는 한국어와 영어 자막입니다. 번역이 훌륭하다곤 했지만, 뉴욕과 LA, 샌프란시스코 등 해안가 국제도시를 제외한 상당수의 미국인들은 미국 바깥의 세상을 굳이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익명의 한 할리우드 여배우가 외국인들이 판치는 아카데미라는 트럼프와 비슷한 이유를 들며 '기생충'에 투표하지 않았다는 기사도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시상식이 시작됐고, 정신없이 바깥에서 생방송으로 소식을 전하는 동안 모두가 아는 놀라운 '작품상' 수상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방송 중이던 저는 순식간에 외국 기자들의 주목을 받게 됐죠.
아카데미는 안정보다는 파격에 손을 들어줬습니다. '로컬'보다는 '인터내셔널'을 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 시대에 특히 문화 콘텐츠는 BTS에서 볼 수 있듯이 국경의 벽이 없어지는 추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생충' 발언은 할리우드 국경에 장벽을 다시 세우고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자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본래부터 미 공화당과 특히 '이단아'인 트럼프 자신에게 부정적인 미 영화인들을 겨냥한 것으로도 보이는데요. 예전부터 할리우드의 표심은 트럼프에게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이번 아카데미 영화제 소감을 통해 대놓고 트럼프를 겨냥한 배우도 있습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로 남우조연상을 받은 브래드 피트입니다.
그는 "수상 소감을 위해 주어진 시간이 45초라고 한다. 적어도 미 상원이 존 볼턴(전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에게 준 시간보다 45초나 많다"고 말했는데요.
트럼프의 측근 중에 존 볼턴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대표적 대북 강경파인데요. 트럼프가 지난해 9월 트위터로 돌연 볼턴을 해고해버립니다. 볼턴이 최근 민주당이 추진한 트럼프 탄핵심판에서 증인으로 채택되느냐를 놓고 미 상원에서 줄다리기가 벌어지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공화당이 결국 저지해냅니다.
맥락은 복잡하지만 브래드 피트는 "나는 정말 트럼프가 싫다" 정도로 요약해 이해하시면 됩니다. 트럼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그의 팬이 아니다. 그는 일어나서 잘난 체하는 말을 했다. 그는 잘난 체하는 인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트럼프 VS 브래드 피트·'기생충'이 된 거죠. 아시다시피 브래드 피트는 송강호와 봉준호 감독과 미국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괜한 시비로 '기생충'에 대한 전 세계인의 관심도가 더욱 커지는 것을 물론 '기생충'의 팬덤은 더욱 커지는 모양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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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우 기자 museho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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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아카데미 작품상…4관왕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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