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 재발견] 100여 년의 수난사
입력 2013.05.05 (21:25)
수정 2013.05.0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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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이번에 숭례문을 복구하면서 일제가 허물었던 좌우의 성벽도 일부 복원이 됐습니다.
하지만 한양도성의 수난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양도성 재발견 연속보도 오늘은 그 두 번째로 순서로 도성의 훼손 실태를 박현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남대문은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가 빠져나간 문입니다.
<녹취>나가이 키타로 (조선회고록 1915년): "파괴하기엔 아깝지 않습니까?"
좌우의 성벽은 허물어졌지만 숭례문과 흥인지문은 이렇게 일제의 악행을 견디고 살아 남았습니다.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던 성벽이 뚝 끊어졌습니다.
산 허리가 잘리면서 성벽도 흔적없이 사라졌습니다.
도성 터에 세워진 조선 신궁. 일본 왕을 위해, 조선 백성보호를 위해 쌓은 성벽을 허문 겁니다.
이렇게 몇몇 복원된 부분을 빼놓고는 남산에서 숭례문까지 도성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한양도성의 수난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에도 계속됩니다.
한국전쟁 후엔 성을 따라 천막과 판잣집이 지어졌습니다.
성돌을 빼내 집을 짓거나 아예 성벽을 축대로 삼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이종분(서울 신당동): "몰랐죠 그냥 담을 쌓아놓은 줄 알았죠 주위들이 다 집을 짓고 있었으니까..."
600년 도성은 그렇게 자신의 몸을 헐고, 기대어 살아가는 민초들을 품어 안았습니다.
<인터뷰> 김도형('순성의 즐거움' 저자): "문화재 이런 것이 관심을 가질 여유조차 없었어요. 여러 사람들이 모이면서 이렇게 주택을 깔고 앉았던 것"
전체 18.6킬로미터 가운데 멸실 훼손된 구간은 3분 1 정도.
일제의 만행과 우리의 무관심이 겹치면서, 여기저기 끊어진 도성을 따라 수난의 역사가 동행합니다.
KBS 뉴스 박현입니다.
이번에 숭례문을 복구하면서 일제가 허물었던 좌우의 성벽도 일부 복원이 됐습니다.
하지만 한양도성의 수난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양도성 재발견 연속보도 오늘은 그 두 번째로 순서로 도성의 훼손 실태를 박현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남대문은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가 빠져나간 문입니다.
<녹취>나가이 키타로 (조선회고록 1915년): "파괴하기엔 아깝지 않습니까?"
좌우의 성벽은 허물어졌지만 숭례문과 흥인지문은 이렇게 일제의 악행을 견디고 살아 남았습니다.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던 성벽이 뚝 끊어졌습니다.
산 허리가 잘리면서 성벽도 흔적없이 사라졌습니다.
도성 터에 세워진 조선 신궁. 일본 왕을 위해, 조선 백성보호를 위해 쌓은 성벽을 허문 겁니다.
이렇게 몇몇 복원된 부분을 빼놓고는 남산에서 숭례문까지 도성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한양도성의 수난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에도 계속됩니다.
한국전쟁 후엔 성을 따라 천막과 판잣집이 지어졌습니다.
성돌을 빼내 집을 짓거나 아예 성벽을 축대로 삼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이종분(서울 신당동): "몰랐죠 그냥 담을 쌓아놓은 줄 알았죠 주위들이 다 집을 짓고 있었으니까..."
600년 도성은 그렇게 자신의 몸을 헐고, 기대어 살아가는 민초들을 품어 안았습니다.
<인터뷰> 김도형('순성의 즐거움' 저자): "문화재 이런 것이 관심을 가질 여유조차 없었어요. 여러 사람들이 모이면서 이렇게 주택을 깔고 앉았던 것"
전체 18.6킬로미터 가운데 멸실 훼손된 구간은 3분 1 정도.
일제의 만행과 우리의 무관심이 겹치면서, 여기저기 끊어진 도성을 따라 수난의 역사가 동행합니다.
KBS 뉴스 박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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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양도성 재발견] 100여 년의 수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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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3-05-05 21:27:21
- 수정2013-05-06 09:2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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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이번에 숭례문을 복구하면서 일제가 허물었던 좌우의 성벽도 일부 복원이 됐습니다.
하지만 한양도성의 수난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양도성 재발견 연속보도 오늘은 그 두 번째로 순서로 도성의 훼손 실태를 박현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남대문은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가 빠져나간 문입니다.
<녹취>나가이 키타로 (조선회고록 1915년): "파괴하기엔 아깝지 않습니까?"
좌우의 성벽은 허물어졌지만 숭례문과 흥인지문은 이렇게 일제의 악행을 견디고 살아 남았습니다.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던 성벽이 뚝 끊어졌습니다.
산 허리가 잘리면서 성벽도 흔적없이 사라졌습니다.
도성 터에 세워진 조선 신궁. 일본 왕을 위해, 조선 백성보호를 위해 쌓은 성벽을 허문 겁니다.
이렇게 몇몇 복원된 부분을 빼놓고는 남산에서 숭례문까지 도성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한양도성의 수난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에도 계속됩니다.
한국전쟁 후엔 성을 따라 천막과 판잣집이 지어졌습니다.
성돌을 빼내 집을 짓거나 아예 성벽을 축대로 삼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이종분(서울 신당동): "몰랐죠 그냥 담을 쌓아놓은 줄 알았죠 주위들이 다 집을 짓고 있었으니까..."
600년 도성은 그렇게 자신의 몸을 헐고, 기대어 살아가는 민초들을 품어 안았습니다.
<인터뷰> 김도형('순성의 즐거움' 저자): "문화재 이런 것이 관심을 가질 여유조차 없었어요. 여러 사람들이 모이면서 이렇게 주택을 깔고 앉았던 것"
전체 18.6킬로미터 가운데 멸실 훼손된 구간은 3분 1 정도.
일제의 만행과 우리의 무관심이 겹치면서, 여기저기 끊어진 도성을 따라 수난의 역사가 동행합니다.
KBS 뉴스 박현입니다.
이번에 숭례문을 복구하면서 일제가 허물었던 좌우의 성벽도 일부 복원이 됐습니다.
하지만 한양도성의 수난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양도성 재발견 연속보도 오늘은 그 두 번째로 순서로 도성의 훼손 실태를 박현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남대문은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가 빠져나간 문입니다.
<녹취>나가이 키타로 (조선회고록 1915년): "파괴하기엔 아깝지 않습니까?"
좌우의 성벽은 허물어졌지만 숭례문과 흥인지문은 이렇게 일제의 악행을 견디고 살아 남았습니다.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던 성벽이 뚝 끊어졌습니다.
산 허리가 잘리면서 성벽도 흔적없이 사라졌습니다.
도성 터에 세워진 조선 신궁. 일본 왕을 위해, 조선 백성보호를 위해 쌓은 성벽을 허문 겁니다.
이렇게 몇몇 복원된 부분을 빼놓고는 남산에서 숭례문까지 도성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한양도성의 수난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에도 계속됩니다.
한국전쟁 후엔 성을 따라 천막과 판잣집이 지어졌습니다.
성돌을 빼내 집을 짓거나 아예 성벽을 축대로 삼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이종분(서울 신당동): "몰랐죠 그냥 담을 쌓아놓은 줄 알았죠 주위들이 다 집을 짓고 있었으니까..."
600년 도성은 그렇게 자신의 몸을 헐고, 기대어 살아가는 민초들을 품어 안았습니다.
<인터뷰> 김도형('순성의 즐거움' 저자): "문화재 이런 것이 관심을 가질 여유조차 없었어요. 여러 사람들이 모이면서 이렇게 주택을 깔고 앉았던 것"
전체 18.6킬로미터 가운데 멸실 훼손된 구간은 3분 1 정도.
일제의 만행과 우리의 무관심이 겹치면서, 여기저기 끊어진 도성을 따라 수난의 역사가 동행합니다.
KBS 뉴스 박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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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 기자 wh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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