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균 엄마’에서 ‘산재 노동자의 어머니’로
입력 2019.12.10 (21:33)
수정 2019.12.10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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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고 김용균 씨가 사고로 숨진 이후부터 어머니 김미숙 씨의 삶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평범한 한 젊은이의 어머니에서 이제는 산업재해 노동자들을 보듬는 사회운동가로 변신한 김미숙 씨의 지난 1년을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전역 후 7달 만에 얻은 첫 직장,
[김미숙/故 김용균 씨 어머니/지난해 12월 : "아이가 취업을 한다고 일곱달 동안 여기저기 수십군데를 이력서를 넣었는데..."]
출근 3달 만에 차가운 몸이 돼 돌아온 아들.
["용균이를 살릴 수는 없지만, 또 다른 아이들의 죽음은 막아야."]
[김미숙/故 김용균 씨 어머니/지난해 12월 : "여러분이 도와주십시오. 저는 정말 그냥 엄마, 보통 엄마였습니다."]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보통 엄마'의 삶,
거리에서… 국회에서… '김용균 법' 성과로 이어지기도,
[지난해 12월 :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법률안 대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거리를 떠나지 못하는 엄마,
책임자들은 처벌을 피해가고 용균이의 동료들은 여전히 위험 속에,
["원청이 사고 책임을 져야 마땅하고 그 책임이 강력히 될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용균 엄마'에서 '산재 노동자의 어머니'로,
김미숙 씨의 싸움은 여전히 진행중.
고 김용균 씨가 사고로 숨진 이후부터 어머니 김미숙 씨의 삶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평범한 한 젊은이의 어머니에서 이제는 산업재해 노동자들을 보듬는 사회운동가로 변신한 김미숙 씨의 지난 1년을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전역 후 7달 만에 얻은 첫 직장,
[김미숙/故 김용균 씨 어머니/지난해 12월 : "아이가 취업을 한다고 일곱달 동안 여기저기 수십군데를 이력서를 넣었는데..."]
출근 3달 만에 차가운 몸이 돼 돌아온 아들.
["용균이를 살릴 수는 없지만, 또 다른 아이들의 죽음은 막아야."]
[김미숙/故 김용균 씨 어머니/지난해 12월 : "여러분이 도와주십시오. 저는 정말 그냥 엄마, 보통 엄마였습니다."]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보통 엄마'의 삶,
거리에서… 국회에서… '김용균 법' 성과로 이어지기도,
[지난해 12월 :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법률안 대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거리를 떠나지 못하는 엄마,
책임자들은 처벌을 피해가고 용균이의 동료들은 여전히 위험 속에,
["원청이 사고 책임을 져야 마땅하고 그 책임이 강력히 될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용균 엄마'에서 '산재 노동자의 어머니'로,
김미숙 씨의 싸움은 여전히 진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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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균 엄마’에서 ‘산재 노동자의 어머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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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12-10 21:35:28
- 수정2019-12-10 21:39:40
[앵커]
고 김용균 씨가 사고로 숨진 이후부터 어머니 김미숙 씨의 삶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평범한 한 젊은이의 어머니에서 이제는 산업재해 노동자들을 보듬는 사회운동가로 변신한 김미숙 씨의 지난 1년을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전역 후 7달 만에 얻은 첫 직장,
[김미숙/故 김용균 씨 어머니/지난해 12월 : "아이가 취업을 한다고 일곱달 동안 여기저기 수십군데를 이력서를 넣었는데..."]
출근 3달 만에 차가운 몸이 돼 돌아온 아들.
["용균이를 살릴 수는 없지만, 또 다른 아이들의 죽음은 막아야."]
[김미숙/故 김용균 씨 어머니/지난해 12월 : "여러분이 도와주십시오. 저는 정말 그냥 엄마, 보통 엄마였습니다."]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보통 엄마'의 삶,
거리에서… 국회에서… '김용균 법' 성과로 이어지기도,
[지난해 12월 :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법률안 대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거리를 떠나지 못하는 엄마,
책임자들은 처벌을 피해가고 용균이의 동료들은 여전히 위험 속에,
["원청이 사고 책임을 져야 마땅하고 그 책임이 강력히 될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용균 엄마'에서 '산재 노동자의 어머니'로,
김미숙 씨의 싸움은 여전히 진행중.
고 김용균 씨가 사고로 숨진 이후부터 어머니 김미숙 씨의 삶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평범한 한 젊은이의 어머니에서 이제는 산업재해 노동자들을 보듬는 사회운동가로 변신한 김미숙 씨의 지난 1년을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전역 후 7달 만에 얻은 첫 직장,
[김미숙/故 김용균 씨 어머니/지난해 12월 : "아이가 취업을 한다고 일곱달 동안 여기저기 수십군데를 이력서를 넣었는데..."]
출근 3달 만에 차가운 몸이 돼 돌아온 아들.
["용균이를 살릴 수는 없지만, 또 다른 아이들의 죽음은 막아야."]
[김미숙/故 김용균 씨 어머니/지난해 12월 : "여러분이 도와주십시오. 저는 정말 그냥 엄마, 보통 엄마였습니다."]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보통 엄마'의 삶,
거리에서… 국회에서… '김용균 법' 성과로 이어지기도,
[지난해 12월 :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법률안 대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거리를 떠나지 못하는 엄마,
책임자들은 처벌을 피해가고 용균이의 동료들은 여전히 위험 속에,
["원청이 사고 책임을 져야 마땅하고 그 책임이 강력히 될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용균 엄마'에서 '산재 노동자의 어머니'로,
김미숙 씨의 싸움은 여전히 진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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