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죄”에 응답하는 데 30년…파란만장 윤 씨의 삶

입력 2020.01.14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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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불법수사로 억울한 옥살이
항소심부터 줄곧 무죄 주장
출소 후 10년간 성실한 생활
재심 개시 결정으로 명예회복 시작

"나는 무죄입니다."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범인으로 잡혀 20년 동안 옥살이를 한 윤 모 씨가 지난해 11월 재심 청구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윤 씨는 이 말을 30년 전인 1989년 항소심 법정에서도, 2003년 옥살이 중에 기자가 찾아갔을 때도 했다.

이 한결같은 주장을 세상이 받아들이는 데는 3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법원은 오늘(14일) 윤 씨에 대한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살인자라는 낙인으로 산 '잃어버린 30년'을 바로잡는 작업이 막 시작된 것이다. 윤 씨가 눈물로 삼킨 30년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했다.


1989년 7월: 불법체포와 강압수사

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 벌어졌다. 자신의 집에서 잠을 자던 13살 박 모 양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경찰은 이듬해인 1989년 7월 25일 자신이 일하던 경운기 수리점에서 저녁 식사를 하던 윤 씨를 체포했다. 체포영장이 없는 불법체포였다.

윤 씨 체포에는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와 윤 씨의 체모가 일치한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최근 검찰에서 조작됐다고 결론 내린 그 감정서이다.

체포된 윤 씨는 잠을 자지 못하고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부인하고 있지만, 윤 씨는 쪼그려뛰기 등 가혹행위를 당한 기억이 분명하다.


1989년 10월: 자백과 무기징역

강압수사를 받은 윤 씨는 자신이 범인이라고 허위자백을 했다. 수사기록엔 사건 현장 출입문 앞에 놓인 책상을 윤 씨가 두 발로 짚고 넘어갔다고 돼 있었다.

다리가 불편한 윤 씨는 현장검증에서 책상을 발과 손바닥으로 짚고 넘어갔다. 이걸 지켜보는 검사의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있는데, 검사는 아무런 의심 없이 윤 씨를 재판에 넘겼다.

윤 씨는 1심에서는 강압수사 주장을 하지 않았고, 법원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심부터는 강압수사 때문에 허위자백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심 판결문에 윤 씨의 국선변호인으로 적혀있는 변호사에게 윤 씨 사건을 물었다. 이 변호사는 자신이 다른 재판 선고 때문에 법정에 나가 있었는데, 윤 씨 변호인이 안 와서 재판부 부탁으로 윤 씨 선고 때 변호인석에 앉아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윤 씨의 진짜 국선변호인은 누구였는지, 그 사람이 역할을 했는지 아직도 확인되지 않았다. 윤 씨의 무기징역은 그대로 확정됐다.


2003년 5월: "사람 죽인적 없다" 언론 인터뷰

2003년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이 개봉했다. 이즈음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이 옥살이를 하는 윤 씨를 찾아갔다.

당시 기사를 보면 윤 씨를 찾아간 건 억울한 얘기를 들으려던 게 아니라 8차 사건 말고 다른 사건에 대해서도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윤 씨는 다른 사건을 묻는 기자에게 "8차 사건도 내가 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수사과정에서 구타 등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말도 했다.

이 인터뷰는 윤 씨가 형 확정 이후 최초로 한 언론 인터뷰였는데,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 최근 이춘재 검거 이후 뒤늦게 주목을 받았다.


2009년 8월: 출소

영화의 인기로 잠시 이춘재 사건을 떠올리던 사람들은 영화와 함께 사건도 잊어갔다. 윤 씨의 '억울한 옥살이'도 마찬가지였다.

윤 씨는 20년을 살고 2009년 가석방됐다. 갈 곳도 가족도 없었던 윤 씨는 교도소에서 인연을 맺은 교화위원의 도움으로 자리를 잡았다.

윤 씨는 교화위원에게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걸 믿어주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이후 10년 동안 범인이 아니라는 걸 말과 행동으로 보여줬다.

출소자들이 모여 생활하는 곳에서 월급의 절반을 저축하고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등의 생활 규칙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 이곳에서 3년을 살고 따로 나와 7년을 지내면서도 사고 한 번 치지 않았다.


2019년 9월: 이춘재의 자백

명예회복의 기회는 예기치 않게 찾아왔다. 경찰이 혹시나 해서 국과수에 감정을 맡긴 이춘재 사건 증거물에서 이춘재의 DNA가 검출된 것이다.

DNA 증거를 갖고 찾아간 경찰에게 이춘재는 예상보다 더 많은 살인을 자백했다. 여기에는 윤 씨가 옥살이를 한 8차 사건도 포함돼 있었다.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가 윤 씨를 돕겠다고 나섰다. 2019년 11월, 윤 씨는 30년 전 만에 수원지방법원을 다시 찾아 재심 청구서를 제출했다.

30년 전 검경은 믿지 못할 괴물이었지만, 지금의 검경은 달랐다. 윤 씨가 "지금 경찰은 100% 신뢰한다"고 할 정도로 경찰은 진실규명에 최선을 다했다. 검찰도 직접 조사를 통해 재심을 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2020년 1월: 법원, 재심 개시 결정

수원지방법원은 두 달 동안의 심리를 거쳐 오늘 윤 씨의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재판부는 "이춘재가 수사기관에서 조사받으면서 자신이 이 사건의 진범이라는 취지의 자백진술을 했고, 여러 증거를 종합하면 이 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인정된다"며 "윤 씨의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법원은 다음 달 초 재심 재판을 준비하는 재판 준비 절차를 진행하고, 3월 중에 정식 재판 날짜를 정해 재심을 시작할 계획이다.

30년 전 돈도 없고 백도 없던 윤 씨 옆에는 국선변호인이 있었지만, 지금은 든든한 재심 전문 변호사가 함께하고 있다. 윤 씨 관련 기사마다 내 일처럼 억울해 하는 댓글을 달아준 대중의 지지도 두텁다.

무엇보다 후진적 사법 체계가 덮어버린 진실이 이제는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30년 동안 한결같았던 윤 씨의 외침에 세상의 응답이 막 시작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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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무죄”에 응답하는 데 30년…파란만장 윤 씨의 삶
    • 입력 2020-01-14 14:01:25
    취재K
불법수사로 억울한 옥살이 <br />항소심부터 줄곧 무죄 주장 <br />출소 후 10년간 성실한 생활 <br />재심 개시 결정으로 명예회복 시작
"나는 무죄입니다."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범인으로 잡혀 20년 동안 옥살이를 한 윤 모 씨가 지난해 11월 재심 청구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윤 씨는 이 말을 30년 전인 1989년 항소심 법정에서도, 2003년 옥살이 중에 기자가 찾아갔을 때도 했다.

이 한결같은 주장을 세상이 받아들이는 데는 3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법원은 오늘(14일) 윤 씨에 대한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살인자라는 낙인으로 산 '잃어버린 30년'을 바로잡는 작업이 막 시작된 것이다. 윤 씨가 눈물로 삼킨 30년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했다.


1989년 7월: 불법체포와 강압수사

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 벌어졌다. 자신의 집에서 잠을 자던 13살 박 모 양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경찰은 이듬해인 1989년 7월 25일 자신이 일하던 경운기 수리점에서 저녁 식사를 하던 윤 씨를 체포했다. 체포영장이 없는 불법체포였다.

윤 씨 체포에는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와 윤 씨의 체모가 일치한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최근 검찰에서 조작됐다고 결론 내린 그 감정서이다.

체포된 윤 씨는 잠을 자지 못하고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부인하고 있지만, 윤 씨는 쪼그려뛰기 등 가혹행위를 당한 기억이 분명하다.


1989년 10월: 자백과 무기징역

강압수사를 받은 윤 씨는 자신이 범인이라고 허위자백을 했다. 수사기록엔 사건 현장 출입문 앞에 놓인 책상을 윤 씨가 두 발로 짚고 넘어갔다고 돼 있었다.

다리가 불편한 윤 씨는 현장검증에서 책상을 발과 손바닥으로 짚고 넘어갔다. 이걸 지켜보는 검사의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있는데, 검사는 아무런 의심 없이 윤 씨를 재판에 넘겼다.

윤 씨는 1심에서는 강압수사 주장을 하지 않았고, 법원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심부터는 강압수사 때문에 허위자백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심 판결문에 윤 씨의 국선변호인으로 적혀있는 변호사에게 윤 씨 사건을 물었다. 이 변호사는 자신이 다른 재판 선고 때문에 법정에 나가 있었는데, 윤 씨 변호인이 안 와서 재판부 부탁으로 윤 씨 선고 때 변호인석에 앉아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윤 씨의 진짜 국선변호인은 누구였는지, 그 사람이 역할을 했는지 아직도 확인되지 않았다. 윤 씨의 무기징역은 그대로 확정됐다.


2003년 5월: "사람 죽인적 없다" 언론 인터뷰

2003년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이 개봉했다. 이즈음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이 옥살이를 하는 윤 씨를 찾아갔다.

당시 기사를 보면 윤 씨를 찾아간 건 억울한 얘기를 들으려던 게 아니라 8차 사건 말고 다른 사건에 대해서도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윤 씨는 다른 사건을 묻는 기자에게 "8차 사건도 내가 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수사과정에서 구타 등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말도 했다.

이 인터뷰는 윤 씨가 형 확정 이후 최초로 한 언론 인터뷰였는데,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 최근 이춘재 검거 이후 뒤늦게 주목을 받았다.


2009년 8월: 출소

영화의 인기로 잠시 이춘재 사건을 떠올리던 사람들은 영화와 함께 사건도 잊어갔다. 윤 씨의 '억울한 옥살이'도 마찬가지였다.

윤 씨는 20년을 살고 2009년 가석방됐다. 갈 곳도 가족도 없었던 윤 씨는 교도소에서 인연을 맺은 교화위원의 도움으로 자리를 잡았다.

윤 씨는 교화위원에게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걸 믿어주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이후 10년 동안 범인이 아니라는 걸 말과 행동으로 보여줬다.

출소자들이 모여 생활하는 곳에서 월급의 절반을 저축하고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등의 생활 규칙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 이곳에서 3년을 살고 따로 나와 7년을 지내면서도 사고 한 번 치지 않았다.


2019년 9월: 이춘재의 자백

명예회복의 기회는 예기치 않게 찾아왔다. 경찰이 혹시나 해서 국과수에 감정을 맡긴 이춘재 사건 증거물에서 이춘재의 DNA가 검출된 것이다.

DNA 증거를 갖고 찾아간 경찰에게 이춘재는 예상보다 더 많은 살인을 자백했다. 여기에는 윤 씨가 옥살이를 한 8차 사건도 포함돼 있었다.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가 윤 씨를 돕겠다고 나섰다. 2019년 11월, 윤 씨는 30년 전 만에 수원지방법원을 다시 찾아 재심 청구서를 제출했다.

30년 전 검경은 믿지 못할 괴물이었지만, 지금의 검경은 달랐다. 윤 씨가 "지금 경찰은 100% 신뢰한다"고 할 정도로 경찰은 진실규명에 최선을 다했다. 검찰도 직접 조사를 통해 재심을 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2020년 1월: 법원, 재심 개시 결정

수원지방법원은 두 달 동안의 심리를 거쳐 오늘 윤 씨의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재판부는 "이춘재가 수사기관에서 조사받으면서 자신이 이 사건의 진범이라는 취지의 자백진술을 했고, 여러 증거를 종합하면 이 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인정된다"며 "윤 씨의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법원은 다음 달 초 재심 재판을 준비하는 재판 준비 절차를 진행하고, 3월 중에 정식 재판 날짜를 정해 재심을 시작할 계획이다.

30년 전 돈도 없고 백도 없던 윤 씨 옆에는 국선변호인이 있었지만, 지금은 든든한 재심 전문 변호사가 함께하고 있다. 윤 씨 관련 기사마다 내 일처럼 억울해 하는 댓글을 달아준 대중의 지지도 두텁다.

무엇보다 후진적 사법 체계가 덮어버린 진실이 이제는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30년 동안 한결같았던 윤 씨의 외침에 세상의 응답이 막 시작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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