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조 유상증자 ‘반나절’ 만에 찬성…사외이사가 일하는 법

입력 2025.03.31 (21:34) 수정 2025.04.01 (08:0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국내 주식시장 과제를 짚어보는 연속 기획 순서, 오늘(31일)도 사외이사 문제 더 짚어보겠습니다.

조직 감시와 견제 등의 역할을 해야 하는 사외이사, 어떻게 일하길래 '거수기' 논란이 끊이지 않을까요?

주주들 이익 침해 논란을 키운 최근 사례들을 송수진 기자가 밀착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대표적 방위산업 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투자금이 부족하다며 지난 20일 3조 6천억 원 유상증자를 결정했습니다.

이를 결정한 이사회는 사내이사 3명, 사외이사 4명.

사외이사들은 유상증자 안건을 이사회 당일 공유받았고, 두 시간여 뒤 표결에서 모두 찬성합니다.

역대 최대 유상증자가 반나절 만에 의결된 겁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음성변조 : "(유상증자 안건을) 자세히 설명하는 사전 설명회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충분히 설명하고 의견 청취까지 한 뒤에…."]

앞서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가진 한화오션 지분을 사느라 1조 3천억 원의 대규모 현금을 쓴 점, 주가 하락에 대한 우려 등은 사실상 무사통과였습니다.

건설기계 제조사인 두산밥캣.

산업용 로봇을 만드는 두산로보틱스.

지난해 7월 합병 계획을 내놓습니다.

적자만 내는 로보틱스 주식 가치를 1, 연간 1조 원 이상도 버는 밥캣을 0.63으로 잡은 합병 비율이 화근이 됐습니다.

밥캣 사외이사 4명 모두 합병안에 찬성했는데, 논란이 거세지고 한 달 뒤 합병 철회안이 올라오자, 이번에도 전원 찬성.

합병 하자도 찬성, 말자도 찬성이었습니다.

한 사외이사는 "지배주주는 주인 의식을 많이 가진 사람"이라며 "그들 의견이 많이 관철되는 건 나쁘지 않다"고 KBS에 밝혔습니다.

최근 2년 동안 10대 그룹 상장사 이사회의 의결 안건은 6천백여 건.

부결된 안건은 14건입니다.

이 중 사외이사 개개인이 던진 반대표는 총 51표였습니다.

[박주근/기업분석업체 '리더스인덱스' 대표 : "이제 경영진 오너 일가에 이익되는 쪽이 (사외이사) 자기들이 하는 본연의 임무라고 생각하니까 주주들은 안중에도 없는 거죠."]

한화 측은 유상증자가 방산 경쟁력 확보에 최선이라는 입장을, 두산 측은 주주들 의견을 수용해 합병안을 철회했다고 전해왔습니다.

KBS 뉴스 송수진입니다.

촬영기자:지선호 황종원/영상편집:이인영/그래픽:최창준

[앵커]

이러니 사외이사 무용론까지 나올 만도 합니다.

기업 주주총회가 몰리는 매년 이맘 때마다 같은 논란이 반복 되는데, 사외이사 제도가 도입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현실은 제자립니다.

왜 그런 건지, 박찬 기자가 사외이사들을 만나 이야기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대우중공업 주주총회/1998년 2월 : "(사외이사 선임이) 회사 운영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기대됩니다."]

사외이사는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재벌 개혁의 일환으로 도입됐습니다.

[KBS 뉴스9/1998년 2월 : "대기업들이 오늘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들을 잇달아 선임하고 있습니다."]

SK텔레콤 1기 사외이사였던 김대식 교수.

[김대식/SK텔레콤 첫 사외이사 : "(기존 이사들이) 저 사람들은 좀 이상하다. 이때까지 관행하고 이사회에서 다른 걸 계속 제시하고 그러니깐 도대체 당신들의 목적이 뭐냐 이런 거죠."]

눈엣가시 취급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김대식/SK텔레콤 첫 사외이사 : "우리가 펄펄 뛰고 '속인 거 아니냐, 계약 원 상태로 해라' 그랬더니, (경영진이) 우리 할 능력이 없다, 나자빠지는 거죠."]

28년이 지난 지금.

요즘 이사회는 좀 달라졌을까.

[이원기/금융사 현직 사외이사 : "토론과 논쟁이 없는 기존의 이사회에 사외이사가 가서 혼자서 막 반대 의견을 내기에는 되게 어색한 분위기가 되는 것이거든요."]

변한 게 없는 건 아닙니다.

코스피 사외이사 1명의 보수.

2010년엔 평균 2,950만 원, 2020년엔 4,100만 원으로 올랐습니다.

시가총액 상위 20개 기업만 보면 올해 1억 6백만 원입니다.

[이원기/금융사 현직 사외이사 : "임명해 준 경영진들에 대해 보답하고 싶은 거예요. 사외이사들이 경영진을 견제·감시하기보다는 같은 동지 의식을 느끼는 거죠."]

[1999년/소액주주운동 본격화 : "독립적 사외이사를 선임하기 위해…."]

[2001년/상장사 사외이사 의무화 : "25% 이상을 사외이사로 채우도록 한…."]

[2020년/감사위원 분리 선출 : "감사위원 최소 1명을 이사와 분리해서…."]

이렇게 제도는 개선돼 왔습니다.

하지만 '최대주주 바라기'식 경영 문화가 요지부동입니다.

[김대식/SK텔레콤 첫 사외이사 : "지배주주가 힘이 있는 사람이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을 넣어요."]

[이원기/금융사 현직 사외이사 : "현실은 대부분이 사외이사를 현직 경영진들이 또는 지배주주가 선임한다고 봐야 할 겁니다."]

KBS 뉴스 박찬입니다.

촬영기자:이상훈/영상편집:한찬의/그래픽:이근희 김경진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3.6조 유상증자 ‘반나절’ 만에 찬성…사외이사가 일하는 법
    • 입력 2025-03-31 21:34:32
    • 수정2025-04-01 08:01:17
    뉴스 9
[앵커]

국내 주식시장 과제를 짚어보는 연속 기획 순서, 오늘(31일)도 사외이사 문제 더 짚어보겠습니다.

조직 감시와 견제 등의 역할을 해야 하는 사외이사, 어떻게 일하길래 '거수기' 논란이 끊이지 않을까요?

주주들 이익 침해 논란을 키운 최근 사례들을 송수진 기자가 밀착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대표적 방위산업 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투자금이 부족하다며 지난 20일 3조 6천억 원 유상증자를 결정했습니다.

이를 결정한 이사회는 사내이사 3명, 사외이사 4명.

사외이사들은 유상증자 안건을 이사회 당일 공유받았고, 두 시간여 뒤 표결에서 모두 찬성합니다.

역대 최대 유상증자가 반나절 만에 의결된 겁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음성변조 : "(유상증자 안건을) 자세히 설명하는 사전 설명회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충분히 설명하고 의견 청취까지 한 뒤에…."]

앞서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가진 한화오션 지분을 사느라 1조 3천억 원의 대규모 현금을 쓴 점, 주가 하락에 대한 우려 등은 사실상 무사통과였습니다.

건설기계 제조사인 두산밥캣.

산업용 로봇을 만드는 두산로보틱스.

지난해 7월 합병 계획을 내놓습니다.

적자만 내는 로보틱스 주식 가치를 1, 연간 1조 원 이상도 버는 밥캣을 0.63으로 잡은 합병 비율이 화근이 됐습니다.

밥캣 사외이사 4명 모두 합병안에 찬성했는데, 논란이 거세지고 한 달 뒤 합병 철회안이 올라오자, 이번에도 전원 찬성.

합병 하자도 찬성, 말자도 찬성이었습니다.

한 사외이사는 "지배주주는 주인 의식을 많이 가진 사람"이라며 "그들 의견이 많이 관철되는 건 나쁘지 않다"고 KBS에 밝혔습니다.

최근 2년 동안 10대 그룹 상장사 이사회의 의결 안건은 6천백여 건.

부결된 안건은 14건입니다.

이 중 사외이사 개개인이 던진 반대표는 총 51표였습니다.

[박주근/기업분석업체 '리더스인덱스' 대표 : "이제 경영진 오너 일가에 이익되는 쪽이 (사외이사) 자기들이 하는 본연의 임무라고 생각하니까 주주들은 안중에도 없는 거죠."]

한화 측은 유상증자가 방산 경쟁력 확보에 최선이라는 입장을, 두산 측은 주주들 의견을 수용해 합병안을 철회했다고 전해왔습니다.

KBS 뉴스 송수진입니다.

촬영기자:지선호 황종원/영상편집:이인영/그래픽:최창준

[앵커]

이러니 사외이사 무용론까지 나올 만도 합니다.

기업 주주총회가 몰리는 매년 이맘 때마다 같은 논란이 반복 되는데, 사외이사 제도가 도입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현실은 제자립니다.

왜 그런 건지, 박찬 기자가 사외이사들을 만나 이야기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대우중공업 주주총회/1998년 2월 : "(사외이사 선임이) 회사 운영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기대됩니다."]

사외이사는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재벌 개혁의 일환으로 도입됐습니다.

[KBS 뉴스9/1998년 2월 : "대기업들이 오늘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들을 잇달아 선임하고 있습니다."]

SK텔레콤 1기 사외이사였던 김대식 교수.

[김대식/SK텔레콤 첫 사외이사 : "(기존 이사들이) 저 사람들은 좀 이상하다. 이때까지 관행하고 이사회에서 다른 걸 계속 제시하고 그러니깐 도대체 당신들의 목적이 뭐냐 이런 거죠."]

눈엣가시 취급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김대식/SK텔레콤 첫 사외이사 : "우리가 펄펄 뛰고 '속인 거 아니냐, 계약 원 상태로 해라' 그랬더니, (경영진이) 우리 할 능력이 없다, 나자빠지는 거죠."]

28년이 지난 지금.

요즘 이사회는 좀 달라졌을까.

[이원기/금융사 현직 사외이사 : "토론과 논쟁이 없는 기존의 이사회에 사외이사가 가서 혼자서 막 반대 의견을 내기에는 되게 어색한 분위기가 되는 것이거든요."]

변한 게 없는 건 아닙니다.

코스피 사외이사 1명의 보수.

2010년엔 평균 2,950만 원, 2020년엔 4,100만 원으로 올랐습니다.

시가총액 상위 20개 기업만 보면 올해 1억 6백만 원입니다.

[이원기/금융사 현직 사외이사 : "임명해 준 경영진들에 대해 보답하고 싶은 거예요. 사외이사들이 경영진을 견제·감시하기보다는 같은 동지 의식을 느끼는 거죠."]

[1999년/소액주주운동 본격화 : "독립적 사외이사를 선임하기 위해…."]

[2001년/상장사 사외이사 의무화 : "25% 이상을 사외이사로 채우도록 한…."]

[2020년/감사위원 분리 선출 : "감사위원 최소 1명을 이사와 분리해서…."]

이렇게 제도는 개선돼 왔습니다.

하지만 '최대주주 바라기'식 경영 문화가 요지부동입니다.

[김대식/SK텔레콤 첫 사외이사 : "지배주주가 힘이 있는 사람이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을 넣어요."]

[이원기/금융사 현직 사외이사 : "현실은 대부분이 사외이사를 현직 경영진들이 또는 지배주주가 선임한다고 봐야 할 겁니다."]

KBS 뉴스 박찬입니다.

촬영기자:이상훈/영상편집:한찬의/그래픽:이근희 김경진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