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최악의 조건, 최상의 희망” - 방현석 ‘새벽출정’
입력 2021.07.04 (21:31)
수정 2021.07.04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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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희 문학평론가
■ 1980년대 일터에서의 싸움
정치 체제의 부조리는 개선되었다. 그러나 노동 현장에서는 부조리가 이어진다. 이것이 대통령 간선제에서 직선제로의 변화 등을 담은 1987년 ‘6·29선언’ 이후, 7월부터 9월까지 전국에서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난 이유이다. 1980년대 대한민국은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거시 지표로 보면 1970년대 전(前) 정부가 추진한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거시 지표로 알 수 없는 사실도 많다. 예컨대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가는 드러나지 않는다. 1980년대 대한민국 경제 성장을 이끈 실질적 토대는 노동자가 감내한 과노동과 저임금이었다. 건실한 수출 일꾼. 그 실상은 자기 목숨을 기계에 갈아 넣던 노동자였다. 그것은 비공식적 증언과 기록으로 알려졌다.
1989년 계간 <창작과비평> 봄호에 발표한 방현석의 소설 <새벽 출정>은 이 같은 역사적 흐름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새벽 출정>은 ‘87년 체제’ 성립 이후에도 우리 사회의 노동이 미해결된 첨예한 문제임을 역설하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새벽 출정>이 게재된 <창작과비평> 같은 호에는, 진보적 이념 실천과 현실적 고통을 느끼는 육체 사이의 간극을 차갑게 조명한 김영현의 소설 <벌레>도 실렸다. 이를 감안하면 사측과 싸움에 결연하게 임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그린 <새벽 출정>이 얼마나 뜨거운 열도(熱度)를 품은 소설인지 확실히 비교·대조된다. 지금 열패감과 회의감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아직 우리가 항거해야 할 폐단이 수두룩하다. 이런 메시지를 <새벽 출정>은 세광물산 노동조합원의 파업기를 통해 전한다.
■ 회사의 착취, 노동자의 응전
도자기 인형 제조업체 세광물산은 차근차근 회사 규모를 늘려왔다. “처음 시작할 때 하나뿐이던 건물은 다섯 동으로 늘었고 6기뿐이던 가마도 20기로 늘었다. 생산직 사원도 70명에서 300명을 넘어섰다.” 회사 규모는 커졌으나, 노동자는 수혜를 누리지 못했다. “해가 가도 붇지 않는 것은 얇은 월급봉투뿐이었다.” 노동에 따른 합당한 보수를 회사는 지급하지 않았다. 네가 아니어도 일할 사람은 차고 넘친다. 회사는 불만을 품은 직원들을 내보내고, 새로 인력을 고용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에 더해 사측은 동일한 부서를 둘로 쪼개 이들을 경합시키는 술책을 썼다. “한쪽에는 격려와 치하가, 또 한쪽에는 추궁과 압박의 살아있는 근거가 되었다.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었다.” 일과 근무로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작업량을 지시한 것은 회사임에도 노동자들은 서로 반목했다.
<새벽출정>의 배경이 된 1988년 한 도자기인형 제조업체의 파업농성. 조합원들은 위장폐업에 맞서 200일이 넘게 싸웠고, 사측의 일방적인 조치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이들은 보전 받은 임금의 상당 부분을 지역 노동운동을 위해 기부했다.
마침내 그들은 갈등의 본질을 직시한다. 각 부 조장을 맡고 있던 민영과 철순, 그리고 세광물산 창립부터 “신나와 안료 냄새 자욱한 도자기공장을 자신의 평생 일터”로 삼았던 미정은 “부서 분리 철회”를 요구하며 “잔업 특근 거부”를 주도했다. 회사는 요구를 수용하기는커녕 세 사람을 엄중 제재한다. 민영·철순·미정은 회사에 졌다. 절망적 패배만은 아니었다. 이를 계기로 세 사람은 동지애를 단단히 쌓아 세광물산 노조 결성에 열성적으로 나서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 방현석도 그랬다. 그는 대학 학생회장 출신으로 1986년 인천 공장에 취업해 노조 교육선전부장 등을 지냈다.■ 사실성과 문학성
<새벽 출정>의 여러 의의 가운데 하나가 사실성이다. 이 소설은 방현석이 상상으로 지어낸 작품이 아니다. 그의 직간접적 체험이 녹아 있다. 세광물산 노조 결성과 파업은 1988년 인천 주안공단에 있던 세창물산 이야기이다. 세창물산 파업을 도왔던 방현석이 이때 일들을 형상화해 소설로 발표한 것이다. 그것이 <새벽 출정>의 열도가 이토록 뜨거운 연유이다. 머리로 쓴 작품이 아닌 몸으로 쓴 작품이기에 소설의 리얼리티가 핍진하다. 회사의 억압과 회유, 노조의 저항과 이탈 등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것은 이 작품의 분명한 장점이다. 작가의 직간접적 체험은 소설로 재구성하기 편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핍진한 리얼리티와 별개로 감상성에 치우쳐 작품을 망칠 수 있어서다.
소설가 방현석은 대학을 나온 뒤 인천의 공단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함께 생활했던 노동자들의 모습을 여러 작품을 통해 담아냈다.
노동자에게 힘을 싣겠다는 의지는 물론 노동소설에 내포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것이 입체적으로 서사화되지 못하고 강경한 구호에 그치면 ‘프로파간다(propaganda) 소설’이 아니라, ‘프로파간다’가 되어버리고 만다. <새벽 출정>이 1980년대를 대표하는 소설로 거론되는 까닭은 이 작품이 노동과 문학 양쪽의 균형을 다 맞췄다는 데 있다. 가령 방현석은 노동자 투쟁의 대의를 강조하되, 노동자 집단을 순일하게만 표상하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노동자들은 강경하게 노조의 정책을 밀어붙이기도 하나, 부모·학교를 볼모로 삼은 회사의 압박으로 파업 대열에서 빠져나오기도 하고, 회사의 보상금 지급 유혹에 흔들리기도 한다.■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노동자 연대
이처럼 <새벽 출정>은 한뜻으로 모였으나 난관 앞에 분열하는 노동자의 양태를 적시한다. 또한, 인간을 물건 취급하는 사측과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노동자의 끈기를 보여준다. 이 소설은 노동운동이 완전무결하진 않아도, 투쟁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음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깨닫게 한다. 이는 <새벽 출정>이 가진 또 다른 의의인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로 구체화된다. 세광물산 노조에는 남성도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방현석은 “깡순이”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렇게 그는 노동이 남성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노동운동의 선봉과 중심에 여성이 설 수 있음을 예증한다.
세광물산 (여성) 노조가 선흥정밀 (남성) 노조에게 도움받는 관계를 종속적이라고 간주하고, 이 소설에서 여성주의의 한계를 짚어낸 논자도 있기는 하다. 그 지적을 참고해도 <새벽 출정>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크게 희석되지는 않는다. 이들의 존재와 언행은 남성 지배적인 노동운동의 경직성에 균열을 낸다. 실제로 여성 비중이 높았던 세창물산 노조는 조합원들의 개별 의견을 존중하고 합의를 조율한 민주적 노조로 당대에 유명했다. 거기에 바탕을 두고 그들은 “하나 되어 우리 나선다”는 강령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세광물산 노조는 선흥정밀 남성 노조가 아니라, 같은 노동자들과 연대했을 따름이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현재 노동 현장은 여전히 부조리하다. 2020년대 하청업체 비정규 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자 등이 1980년대 세광물산 노동자와 겹친다. 세월이 흘러 상황이 달라졌는데 노동자를 둘러싼 최악의 조건은 비슷하다. 최악의 조건에서 좌절하기는 쉽다. 하지만 최악의 조건에서 최상의 희망을 갖고 싸우는 것은 어렵고 드물어 숭고하다. “그 시대 최악의 조건에서 최상의 희망을 갖고 싸웠던 사람들이 나를 감명시켰다.” <새벽 출정>의 집필 동기를 방현석은 이렇게 밝힌 바 있다. 그런 사람들은 시대에 상관없이 유력하다. 여기에 감명하여 오늘날 독자는 최상의 희망을 새롭게 예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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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희 문학평론가
■ 1980년대 일터에서의 싸움
정치 체제의 부조리는 개선되었다. 그러나 노동 현장에서는 부조리가 이어진다. 이것이 대통령 간선제에서 직선제로의 변화 등을 담은 1987년 ‘6·29선언’ 이후, 7월부터 9월까지 전국에서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난 이유이다. 1980년대 대한민국은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거시 지표로 보면 1970년대 전(前) 정부가 추진한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거시 지표로 알 수 없는 사실도 많다. 예컨대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가는 드러나지 않는다. 1980년대 대한민국 경제 성장을 이끈 실질적 토대는 노동자가 감내한 과노동과 저임금이었다. 건실한 수출 일꾼. 그 실상은 자기 목숨을 기계에 갈아 넣던 노동자였다. 그것은 비공식적 증언과 기록으로 알려졌다.
1989년 계간 <창작과비평> 봄호에 발표한 방현석의 소설 <새벽 출정>은 이 같은 역사적 흐름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새벽 출정>은 ‘87년 체제’ 성립 이후에도 우리 사회의 노동이 미해결된 첨예한 문제임을 역설하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새벽 출정>이 게재된 <창작과비평> 같은 호에는, 진보적 이념 실천과 현실적 고통을 느끼는 육체 사이의 간극을 차갑게 조명한 김영현의 소설 <벌레>도 실렸다. 이를 감안하면 사측과 싸움에 결연하게 임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그린 <새벽 출정>이 얼마나 뜨거운 열도(熱度)를 품은 소설인지 확실히 비교·대조된다. 지금 열패감과 회의감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아직 우리가 항거해야 할 폐단이 수두룩하다. 이런 메시지를 <새벽 출정>은 세광물산 노동조합원의 파업기를 통해 전한다.
■ 회사의 착취, 노동자의 응전
도자기 인형 제조업체 세광물산은 차근차근 회사 규모를 늘려왔다. “처음 시작할 때 하나뿐이던 건물은 다섯 동으로 늘었고 6기뿐이던 가마도 20기로 늘었다. 생산직 사원도 70명에서 300명을 넘어섰다.” 회사 규모는 커졌으나, 노동자는 수혜를 누리지 못했다. “해가 가도 붇지 않는 것은 얇은 월급봉투뿐이었다.” 노동에 따른 합당한 보수를 회사는 지급하지 않았다. 네가 아니어도 일할 사람은 차고 넘친다. 회사는 불만을 품은 직원들을 내보내고, 새로 인력을 고용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에 더해 사측은 동일한 부서를 둘로 쪼개 이들을 경합시키는 술책을 썼다. “한쪽에는 격려와 치하가, 또 한쪽에는 추궁과 압박의 살아있는 근거가 되었다.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었다.” 일과 근무로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작업량을 지시한 것은 회사임에도 노동자들은 서로 반목했다.
마침내 그들은 갈등의 본질을 직시한다. 각 부 조장을 맡고 있던 민영과 철순, 그리고 세광물산 창립부터 “신나와 안료 냄새 자욱한 도자기공장을 자신의 평생 일터”로 삼았던 미정은 “부서 분리 철회”를 요구하며 “잔업 특근 거부”를 주도했다. 회사는 요구를 수용하기는커녕 세 사람을 엄중 제재한다. 민영·철순·미정은 회사에 졌다. 절망적 패배만은 아니었다. 이를 계기로 세 사람은 동지애를 단단히 쌓아 세광물산 노조 결성에 열성적으로 나서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 방현석도 그랬다. 그는 대학 학생회장 출신으로 1986년 인천 공장에 취업해 노조 교육선전부장 등을 지냈다.
■ 사실성과 문학성
<새벽 출정>의 여러 의의 가운데 하나가 사실성이다. 이 소설은 방현석이 상상으로 지어낸 작품이 아니다. 그의 직간접적 체험이 녹아 있다. 세광물산 노조 결성과 파업은 1988년 인천 주안공단에 있던 세창물산 이야기이다. 세창물산 파업을 도왔던 방현석이 이때 일들을 형상화해 소설로 발표한 것이다. 그것이 <새벽 출정>의 열도가 이토록 뜨거운 연유이다. 머리로 쓴 작품이 아닌 몸으로 쓴 작품이기에 소설의 리얼리티가 핍진하다. 회사의 억압과 회유, 노조의 저항과 이탈 등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것은 이 작품의 분명한 장점이다. 작가의 직간접적 체험은 소설로 재구성하기 편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핍진한 리얼리티와 별개로 감상성에 치우쳐 작품을 망칠 수 있어서다.
노동자에게 힘을 싣겠다는 의지는 물론 노동소설에 내포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것이 입체적으로 서사화되지 못하고 강경한 구호에 그치면 ‘프로파간다(propaganda) 소설’이 아니라, ‘프로파간다’가 되어버리고 만다. <새벽 출정>이 1980년대를 대표하는 소설로 거론되는 까닭은 이 작품이 노동과 문학 양쪽의 균형을 다 맞췄다는 데 있다. 가령 방현석은 노동자 투쟁의 대의를 강조하되, 노동자 집단을 순일하게만 표상하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노동자들은 강경하게 노조의 정책을 밀어붙이기도 하나, 부모·학교를 볼모로 삼은 회사의 압박으로 파업 대열에서 빠져나오기도 하고, 회사의 보상금 지급 유혹에 흔들리기도 한다.
■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노동자 연대
이처럼 <새벽 출정>은 한뜻으로 모였으나 난관 앞에 분열하는 노동자의 양태를 적시한다. 또한, 인간을 물건 취급하는 사측과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노동자의 끈기를 보여준다. 이 소설은 노동운동이 완전무결하진 않아도, 투쟁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음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깨닫게 한다. 이는 <새벽 출정>이 가진 또 다른 의의인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로 구체화된다. 세광물산 노조에는 남성도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방현석은 “깡순이”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렇게 그는 노동이 남성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노동운동의 선봉과 중심에 여성이 설 수 있음을 예증한다.
세광물산 (여성) 노조가 선흥정밀 (남성) 노조에게 도움받는 관계를 종속적이라고 간주하고, 이 소설에서 여성주의의 한계를 짚어낸 논자도 있기는 하다. 그 지적을 참고해도 <새벽 출정>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크게 희석되지는 않는다. 이들의 존재와 언행은 남성 지배적인 노동운동의 경직성에 균열을 낸다. 실제로 여성 비중이 높았던 세창물산 노조는 조합원들의 개별 의견을 존중하고 합의를 조율한 민주적 노조로 당대에 유명했다. 거기에 바탕을 두고 그들은 “하나 되어 우리 나선다”는 강령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세광물산 노조는 선흥정밀 남성 노조가 아니라, 같은 노동자들과 연대했을 따름이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현재 노동 현장은 여전히 부조리하다. 2020년대 하청업체 비정규 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자 등이 1980년대 세광물산 노동자와 겹친다. 세월이 흘러 상황이 달라졌는데 노동자를 둘러싼 최악의 조건은 비슷하다. 최악의 조건에서 좌절하기는 쉽다. 하지만 최악의 조건에서 최상의 희망을 갖고 싸우는 것은 어렵고 드물어 숭고하다. “그 시대 최악의 조건에서 최상의 희망을 갖고 싸웠던 사람들이 나를 감명시켰다.” <새벽 출정>의 집필 동기를 방현석은 이렇게 밝힌 바 있다. 그런 사람들은 시대에 상관없이 유력하다. 여기에 감명하여 오늘날 독자는 최상의 희망을 새롭게 예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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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엽 기자 imher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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