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의리(義理)의 민중 소설…김주영의 ‘객주’

입력 2021.11.28 (21:30) 수정 2021.11.28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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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의 <객주>는 1979년 6월부터 5년간 1465회에 걸쳐 서울신문에 연재한 대하 장편 소설이다. 1980년대 중반 9권의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독서가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널리 읽힌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작가 김주영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된 작품이었다.
2010년 이후 경북 울진과 봉화 등에서 보부상의 자취가 실증적으로 드러내고, 작가 스스로 보부상들의 후일담과 연재 당시 미흡했던 이야기를 보충하는 의미에서 연재를 추가하여 마지막 10권을 보태 출간한 게 2013년이다. 그렇게 보면 <객주>는 34년 만에 대미를 장식했다.
작가 김주영이 1939년생이니 만 40세에 시작한 소설을 이순이 지난 나이에 완결했으니 작가의 전성기를 바친 소설이라 해도 큰 무리가 없다. <객주>는 도대체 작가 자신에게는 어떤 소설인가?

작가 스스로 초간본 서문에 세 범주의 창작 동기를 밝힌다.

첫째, 작가의 강박관념이다. 김주영은 청송 진보의 저잣거리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그곳에서 보냈다. 작가는 “내가 살던 집의 울타리 밖이 장터였고 울타리 안쪽이 우리 집 마당이었다.”라고 회고한다. 작가는 장터에서 유년기부터 장돌림을 하는 장꾼들의 치열한 삶을 보면서 자랐다. 장날이 지나고 이튿날 새벽에는 “장꾼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고 저잣거리엔 허섭스레기만 굴러가고 낟곡식을 쪼는 참새 떼들만 새까맣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 적막감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명색 작가가 되면서 나는 그 강력했던 인생들을 어떤 방식으로든지 배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고백적인 강박감에 부대껴 왔다.”라고 진술한다. 다른 말로 하면 작가 김주영은 장꾼들의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작가가 된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재 청송 진보 장터에는 작가 김주영의 생가가 복원되어 옛 시절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둘째, 당시까지의 보통 역사소설의 정치사 편향에 대한 반발이었다. 임금을 둘러싼 궁중 비사 혹은 영웅담 등이 역사소설의 주류였기에 백성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거다. 이 진술은 앞의 진술과 맞물린다. 장꾼들의 이야기니 당연히 민중의 이야기이며, 민중의 생활사가 소설의 전면에 부각할 수밖에 없다.

셋째, 우리말 서술의 화석화에 반발하여 사라져가는 우리말의 ‘가창적 서정성’을 도모하면서 말의 관념성보다는 즉흥성과 감각을 우위에 둔다.

작가 김주영이 밝힌 창작 동기는 작가의 역사관이 스며들어 있는 <객주> 전체를 관통하는 작가의 창작 방법론이라 볼 수 있다. 여기에 하나 보탤 건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 역사소설의 시대적 의미망이다.


김주영이 작가 생활을 시작한 1970년대에 한국의 민감한 작가에게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게 바로 민중의식이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70년대라는 시대의 의미를 읽어내야 할 필요성이 있다.
1970년대는 우리 역사에서 최초로 산업화사회의 초입에 들어서면서 지금도 나타나는 여러 문제가 한꺼번에 대두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노동현장의 열악한 상황, 노동자의 처우와 노동자끼리의 연대 문제, 도시 집중화로 인한 주거문제,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인한 불로소득과 이의 분배를 둘러싼 문제, 급격한 공업화로 인한 환경 문제 등 지금까지 이어지는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가 1970년대에 거의 모두 태동했다. 이런 문제는 당연하게도 전통적 의미의 공동체 의식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시대의 특징적 의미망 구축과 인간성 상실에 촉각을 세우는 민감한 작가는 이런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황석영, 윤흥길, 박완서, 조세희, 김주영과 같은 작가는 이런 문제를 정면으로 혹은 우회적으로 작품화한다. 자연스럽게 천민자본주의적인 인간의 이중성이 나타나면서 속물에 대한 풍자가 작품화된다. 이렇게 1970년대의 문학은 전후(戰後)의 공동체 해체와 개인주의의 대두로 특정되는 1950년대와 1960년대와 결별하여 현대성이 두드러지는 문학으로 진입한다.

한편으로 1970년대는 급격히 국민 소득이 높아지면서 삶의 질도 향상되던 시대였다. 민중의식이 직접적인 투쟁소설로 발현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문학적 전통의 자장 속에서 역사의 주역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민중을 어떻게 역사의 주인으로 그려내는가 하는 문제는 여러 작가가 공통으로 고민했던 문제이기도 했다.

김주영이 역사 속에서 사농공상의 서열로 천대받던 상인계층을 파고들면서 김주영식 의리(義理) 사상을 발현시킨 소설이 바로 <객주>였다. <객주>는 산업화사회의 초입에서, ‘우리끼리’는 의리를 지키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 의식을 ‘보부상 이야기’라는 틀 속에서 전개한 소설이다. 동양적, 한국적 전통에서 의리(義理)란 특정 집단이 도리를 지키고 함께 살자는 일종의 도덕적 질서 의식이다. 의리가 삼강오륜과 다른 점은 국가 전체의 통치 이데올로기가 아닌 보부상과 같은 특정한 집단에서 강력하게 발현된다는 점이다. 지배 세력의 기득권에 맞서 집단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의리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의리는 곧 생존이기 때문이다.


<객주>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시대적 배경이다. <객주>는 1870년, 1980년 중반까지 집필 시점에서 딱 100년 이전의 한국사를 배경으로 한다. 이때가 바로 임오군란이나 갑신정변 등이 터져 나온 조선 말기의 가장 극적인 변혁기였다. 조선이라는 왕조 국가의 여러 겹쳐진 모순이 임계점에 달하여 폭발하는 바로 그 지점을 소설은 시대적 배경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이는 민중의 이야기를 다루되 정치적 사건이 자연스럽게 흡수될 수 있는 시대를 설정한 셈인데, 이로 인해 자신이 어릴 때부터 보아왔던 장꾼의 이야기가 다이내믹한 시대와 혼합되어 굉장히 재미있는 이야기가 탄생하는 전제 조건이 마련된 셈이다.

김주영의 <객주>는 주제적으로는 의리의 민중 소설이면서 해학, 음모, 복수, 성애(性愛) 같은 대중 흡인 요소를 내용으로 장착하면서도, 판소리 사설처럼 유장하고 때로는 ‘가창적 서정성’을 겸비한 문장으로 품위를 잃지 않는다. 이 요소들이 맞물리면서 <객주>는 한국문학의 대중적, 문학적 성취의 한 전범으로 우뚝 솟아 있다.

하응백·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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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1-28 21:30:38
    • 수정2021-11-28 21:36:08
    취재K

김주영의 <객주>는 1979년 6월부터 5년간 1465회에 걸쳐 서울신문에 연재한 대하 장편 소설이다. 1980년대 중반 9권의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독서가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널리 읽힌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작가 김주영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된 작품이었다.
2010년 이후 경북 울진과 봉화 등에서 보부상의 자취가 실증적으로 드러내고, 작가 스스로 보부상들의 후일담과 연재 당시 미흡했던 이야기를 보충하는 의미에서 연재를 추가하여 마지막 10권을 보태 출간한 게 2013년이다. 그렇게 보면 <객주>는 34년 만에 대미를 장식했다.
작가 김주영이 1939년생이니 만 40세에 시작한 소설을 이순이 지난 나이에 완결했으니 작가의 전성기를 바친 소설이라 해도 큰 무리가 없다. <객주>는 도대체 작가 자신에게는 어떤 소설인가?

작가 스스로 초간본 서문에 세 범주의 창작 동기를 밝힌다.

첫째, 작가의 강박관념이다. 김주영은 청송 진보의 저잣거리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그곳에서 보냈다. 작가는 “내가 살던 집의 울타리 밖이 장터였고 울타리 안쪽이 우리 집 마당이었다.”라고 회고한다. 작가는 장터에서 유년기부터 장돌림을 하는 장꾼들의 치열한 삶을 보면서 자랐다. 장날이 지나고 이튿날 새벽에는 “장꾼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고 저잣거리엔 허섭스레기만 굴러가고 낟곡식을 쪼는 참새 떼들만 새까맣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 적막감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명색 작가가 되면서 나는 그 강력했던 인생들을 어떤 방식으로든지 배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고백적인 강박감에 부대껴 왔다.”라고 진술한다. 다른 말로 하면 작가 김주영은 장꾼들의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작가가 된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재 청송 진보 장터에는 작가 김주영의 생가가 복원되어 옛 시절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둘째, 당시까지의 보통 역사소설의 정치사 편향에 대한 반발이었다. 임금을 둘러싼 궁중 비사 혹은 영웅담 등이 역사소설의 주류였기에 백성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거다. 이 진술은 앞의 진술과 맞물린다. 장꾼들의 이야기니 당연히 민중의 이야기이며, 민중의 생활사가 소설의 전면에 부각할 수밖에 없다.

셋째, 우리말 서술의 화석화에 반발하여 사라져가는 우리말의 ‘가창적 서정성’을 도모하면서 말의 관념성보다는 즉흥성과 감각을 우위에 둔다.

작가 김주영이 밝힌 창작 동기는 작가의 역사관이 스며들어 있는 <객주> 전체를 관통하는 작가의 창작 방법론이라 볼 수 있다. 여기에 하나 보탤 건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 역사소설의 시대적 의미망이다.


김주영이 작가 생활을 시작한 1970년대에 한국의 민감한 작가에게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게 바로 민중의식이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70년대라는 시대의 의미를 읽어내야 할 필요성이 있다.
1970년대는 우리 역사에서 최초로 산업화사회의 초입에 들어서면서 지금도 나타나는 여러 문제가 한꺼번에 대두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노동현장의 열악한 상황, 노동자의 처우와 노동자끼리의 연대 문제, 도시 집중화로 인한 주거문제,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인한 불로소득과 이의 분배를 둘러싼 문제, 급격한 공업화로 인한 환경 문제 등 지금까지 이어지는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가 1970년대에 거의 모두 태동했다. 이런 문제는 당연하게도 전통적 의미의 공동체 의식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시대의 특징적 의미망 구축과 인간성 상실에 촉각을 세우는 민감한 작가는 이런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황석영, 윤흥길, 박완서, 조세희, 김주영과 같은 작가는 이런 문제를 정면으로 혹은 우회적으로 작품화한다. 자연스럽게 천민자본주의적인 인간의 이중성이 나타나면서 속물에 대한 풍자가 작품화된다. 이렇게 1970년대의 문학은 전후(戰後)의 공동체 해체와 개인주의의 대두로 특정되는 1950년대와 1960년대와 결별하여 현대성이 두드러지는 문학으로 진입한다.

한편으로 1970년대는 급격히 국민 소득이 높아지면서 삶의 질도 향상되던 시대였다. 민중의식이 직접적인 투쟁소설로 발현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문학적 전통의 자장 속에서 역사의 주역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민중을 어떻게 역사의 주인으로 그려내는가 하는 문제는 여러 작가가 공통으로 고민했던 문제이기도 했다.

김주영이 역사 속에서 사농공상의 서열로 천대받던 상인계층을 파고들면서 김주영식 의리(義理) 사상을 발현시킨 소설이 바로 <객주>였다. <객주>는 산업화사회의 초입에서, ‘우리끼리’는 의리를 지키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 의식을 ‘보부상 이야기’라는 틀 속에서 전개한 소설이다. 동양적, 한국적 전통에서 의리(義理)란 특정 집단이 도리를 지키고 함께 살자는 일종의 도덕적 질서 의식이다. 의리가 삼강오륜과 다른 점은 국가 전체의 통치 이데올로기가 아닌 보부상과 같은 특정한 집단에서 강력하게 발현된다는 점이다. 지배 세력의 기득권에 맞서 집단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의리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의리는 곧 생존이기 때문이다.


<객주>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시대적 배경이다. <객주>는 1870년, 1980년 중반까지 집필 시점에서 딱 100년 이전의 한국사를 배경으로 한다. 이때가 바로 임오군란이나 갑신정변 등이 터져 나온 조선 말기의 가장 극적인 변혁기였다. 조선이라는 왕조 국가의 여러 겹쳐진 모순이 임계점에 달하여 폭발하는 바로 그 지점을 소설은 시대적 배경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이는 민중의 이야기를 다루되 정치적 사건이 자연스럽게 흡수될 수 있는 시대를 설정한 셈인데, 이로 인해 자신이 어릴 때부터 보아왔던 장꾼의 이야기가 다이내믹한 시대와 혼합되어 굉장히 재미있는 이야기가 탄생하는 전제 조건이 마련된 셈이다.

김주영의 <객주>는 주제적으로는 의리의 민중 소설이면서 해학, 음모, 복수, 성애(性愛) 같은 대중 흡인 요소를 내용으로 장착하면서도, 판소리 사설처럼 유장하고 때로는 ‘가창적 서정성’을 겸비한 문장으로 품위를 잃지 않는다. 이 요소들이 맞물리면서 <객주>는 한국문학의 대중적, 문학적 성취의 한 전범으로 우뚝 솟아 있다.

하응백·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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