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쉼표의 의미 -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 읽기

입력 2021.12.12 (21:30) 수정 2021.12.12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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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는 제목 뒤에 빠뜨리기 쉬운 쉼표를 갖고 있다. 그리고 시선은 주인공의 이름이다. 그러니 ‘시선으로부터’ 뒤에 붙은 쉼표는, 시선이라는 인물로부터 다른 인물들에게로 전해진 것들을 적어보려 하면 쉼표 뒤로 꽤 길게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또 여기서 시선이란 말 그대로 바라봄의 방식을 뜻하는 말일 수도 있다. 소설 속 시선(視線)으로부터 비롯되는 사건이나 의미들이 꽤 있음을 뜻하는 제목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쉼표 뒤에 생략된 것들을 찾아가며 <시선으로부터,>를 읽어보고자 한다.


심시선으로부터,

이 이야기의 중심에 놓이는 것은 ‘제사의 재구성’이다. 여기서 제사는 가부장제 가족주의 하에서의 관계를 확인하고 공고히 하는 행사가 아니다. 제사를 지내지 않던 집에서, 그리고 다분히 모계적인 집안에서 단 한 번 치러지는 할머니 심시선의 제사는, 각자가 고인과 자신의 관계를 확인하고 고인과 자신의 삶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돌아보는 개인주의적인 제의로 재해석된다. 심시선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그것으로부터 각자 삶의 자산을 받아 안는 것, 이것이 이 소설 속 제사의 의미이다.

이 제사에 또 다른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여성사적 의미다. 이 소설은 정세랑 작가 스스로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이, 20세기를 살았던 한 독보적인 여성이 남긴 것, 그들로부터 전해진 ‘사랑’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21세기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2015년 이후 활발하게 창작되고 읽혀온 ‘여성 서사’의 흐름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여성 서사의 두 핵심적인 축 가운데 하나인 여성의 계보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셈이다.(다른 하나의 축은 여성의 연대이다. 가령 이 작품에서는 심시선과 민애방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더 중요한 질문은 이 작품이 여성의 계보를 이야기하는 방식이 다른 여성 서사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일 터이다. 오늘날의 젊은 여성들이 이야기 속에서 윗세대 여성들과 관계를 맺을 때, 그들이 상상하는 계보는 주로 역사 속에서, 또는 가부장제 하에서 자기 삶의 주변화를 경험하며 살아온 여성들의 계보인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 계보를 의식하면서도 한편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젊은 세대 여성 인물이 이끌어가는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익숙하다. 말하자면 ‘나는 엄마나 할머니와 같이 살지는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인물들 말이다. 그러나 <시선으로부터,>에서 심시선의 손녀들은 자기 삶의 주체였던 심시선으로부터 그 주체성을 여성적 유산으로 물려받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심시선의 자손들, 딸과 사위, 손녀와 손자 들은 각자가 물려받은 것을 ‘찾아’ 제사상에 가지고 온다. 그 가운데 인상적인 것은 우윤과 지수가 찾아온 ‘자유’와 ‘자부’다. 바다에서 파도를 타며 순간적으로 경험한 ‘자유’, 그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제한들에 맞서는 힘이 된다. 그리고 현지인들의 도움으로 찍은 무지개 사진이 상징하는 ‘자부’는 퀴어 프라이드나 하와이에 사는 이들의 낙원 같은 땅에 대한 자부심과도 같은 자기 삶에 대한 당당한 태도를 의미한다. 이것은 다른 여성 서사에서 상상된 여성의 계보와는 조금은 다른 자기 긍정의 계보를 구성한다.

우윤과 지수만큼이나 화수의 이야기에도 눈길이 간다. 심시선은 마티우스 마우어의 폭력으로부터, 그리고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던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살아남았다. 그러한 시선이 남긴 책들을 읽어나가면서 갓 구운 팬케이크처럼 자신에게 ‘남는’ 힘을 얻는 것이 바로 피해 생존자인 화수다. 그녀는 책을 매개로 한 시선과의 대화를 통해 느리게 자신의 삶을 회복해간다. 이처럼 이 소설은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살아남은 이의 삶의 이야기, 그리고 이러한 ‘심시선의 이야기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얻은 이의 이야기를 함께 담고 있는 피해생존자의 연대기이기도 한 것이다.


시선(視線)으로부터,

최근 수년간 정세랑만큼 독자와 비평계의 관심을 사로잡은 작가가 또 있을까. 하지만 그 작품 세계에 대한 비평적 접근이 활발했다고는 하기 어렵다. 소위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무화하며 유연한 작품 스타일을 구사해온 정세랑 작가는 그야말로 ‘독보적인’ 존재이자 ‘선을 넘는’ 매력의 소유자여서, 기존의 비평적 관점에서 접근하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세랑 작가의 작품이 던지는 중요한 비평적 질문은 이러한 문학의 경계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피프티 피플>에서도 서로 끊임없이 연결되는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선보인 작가는, 이 소설 시선으로부터,에서도 책을 열면 독자를 맞이하는 가계도에서부터 암시되는 다원적 인물 구성, 그리고 그들 각자를 시선의 주인으로 내세우는 다중 초점 서술을 선보이고 있다. 기존 소설이 주로 한 사람의 내면에 집중했다면, 시선으로부터,는 여러 인물에게 번갈아 서술의 초점을 부여하면서 ‘각자의 시선으로 저마다의 삶을’ 이야기하게 한다. 이와 같은 다원적 서술은 한 사람의 내면에 깊숙이 들어가거나 그 인물에게 세계 전체에 대한 시선 권력과 해석적 권위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하는 ‘거리감의 확보’, 그리고 중심성의 회피’의 전략으로 보인다. 한 사람의 내면에 침투하거나 그 사람의 시선과 경험을 오롯이 전유하는 이른바 초점화 서술 전략은 인생의 깊이와 복잡성을 전달하는 데 유리하지만, 그만큼 인물에게 권력과 중심성을 부여하게 되며, 그 결과 주변 인물을 대상화하거나 재단하는 폭력성을 지닐 수도 있다. 정세랑식 다초점 서술은 이러한 기존의 서술 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물론 이러한 다원적 서술은 서사의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한계도 있다. <시선으로부터,>역시 각 장의 첫머리마다 시선이 남긴 말과 글을 제시함으로써 시선의 세계에 힘을 실어주며 서술의 균형을 유지한다. 이러한 허구적 인용은 ‘시선의 일인칭’과 같은 서술적 효과를 자아냄으로써, 화가이자 작가로서 자신의 창작을 이어나가며 ‘독자적인 시선’을 이 세상에 남긴 그녀의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강조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삶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선의 고유한 태도를 인상 깊게 제시하고 있다. 폭력적 상황에서 살아남은 이의 시선은, 기존의 자기중심적인 일인칭의 시선과는 다르다. 그 시선은 자신이 행여라도 폭력성을 지니지 않도록 주의하는 시선이고, 주변의 상처 입은 것들을 유심히 살피는 시선이다. 다른 인물들의 시선도 조금씩 이러한 ‘시선의 시선’을 닮았다. 이러한 성찰과 돌봄의 시선을 제시한 것이 이 소설의 또 다른 미덕일 것이다.

안서현/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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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평] 쉼표의 의미 -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 읽기
    • 입력 2021-12-12 21:30:17
    • 수정2021-12-12 21:32:24
    취재K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는 제목 뒤에 빠뜨리기 쉬운 쉼표를 갖고 있다. 그리고 시선은 주인공의 이름이다. 그러니 ‘시선으로부터’ 뒤에 붙은 쉼표는, 시선이라는 인물로부터 다른 인물들에게로 전해진 것들을 적어보려 하면 쉼표 뒤로 꽤 길게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또 여기서 시선이란 말 그대로 바라봄의 방식을 뜻하는 말일 수도 있다. 소설 속 시선(視線)으로부터 비롯되는 사건이나 의미들이 꽤 있음을 뜻하는 제목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쉼표 뒤에 생략된 것들을 찾아가며 <시선으로부터,>를 읽어보고자 한다.


심시선으로부터,

이 이야기의 중심에 놓이는 것은 ‘제사의 재구성’이다. 여기서 제사는 가부장제 가족주의 하에서의 관계를 확인하고 공고히 하는 행사가 아니다. 제사를 지내지 않던 집에서, 그리고 다분히 모계적인 집안에서 단 한 번 치러지는 할머니 심시선의 제사는, 각자가 고인과 자신의 관계를 확인하고 고인과 자신의 삶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돌아보는 개인주의적인 제의로 재해석된다. 심시선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그것으로부터 각자 삶의 자산을 받아 안는 것, 이것이 이 소설 속 제사의 의미이다.

이 제사에 또 다른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여성사적 의미다. 이 소설은 정세랑 작가 스스로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이, 20세기를 살았던 한 독보적인 여성이 남긴 것, 그들로부터 전해진 ‘사랑’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21세기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2015년 이후 활발하게 창작되고 읽혀온 ‘여성 서사’의 흐름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여성 서사의 두 핵심적인 축 가운데 하나인 여성의 계보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셈이다.(다른 하나의 축은 여성의 연대이다. 가령 이 작품에서는 심시선과 민애방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더 중요한 질문은 이 작품이 여성의 계보를 이야기하는 방식이 다른 여성 서사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일 터이다. 오늘날의 젊은 여성들이 이야기 속에서 윗세대 여성들과 관계를 맺을 때, 그들이 상상하는 계보는 주로 역사 속에서, 또는 가부장제 하에서 자기 삶의 주변화를 경험하며 살아온 여성들의 계보인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 계보를 의식하면서도 한편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젊은 세대 여성 인물이 이끌어가는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익숙하다. 말하자면 ‘나는 엄마나 할머니와 같이 살지는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인물들 말이다. 그러나 <시선으로부터,>에서 심시선의 손녀들은 자기 삶의 주체였던 심시선으로부터 그 주체성을 여성적 유산으로 물려받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심시선의 자손들, 딸과 사위, 손녀와 손자 들은 각자가 물려받은 것을 ‘찾아’ 제사상에 가지고 온다. 그 가운데 인상적인 것은 우윤과 지수가 찾아온 ‘자유’와 ‘자부’다. 바다에서 파도를 타며 순간적으로 경험한 ‘자유’, 그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제한들에 맞서는 힘이 된다. 그리고 현지인들의 도움으로 찍은 무지개 사진이 상징하는 ‘자부’는 퀴어 프라이드나 하와이에 사는 이들의 낙원 같은 땅에 대한 자부심과도 같은 자기 삶에 대한 당당한 태도를 의미한다. 이것은 다른 여성 서사에서 상상된 여성의 계보와는 조금은 다른 자기 긍정의 계보를 구성한다.

우윤과 지수만큼이나 화수의 이야기에도 눈길이 간다. 심시선은 마티우스 마우어의 폭력으로부터, 그리고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던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살아남았다. 그러한 시선이 남긴 책들을 읽어나가면서 갓 구운 팬케이크처럼 자신에게 ‘남는’ 힘을 얻는 것이 바로 피해 생존자인 화수다. 그녀는 책을 매개로 한 시선과의 대화를 통해 느리게 자신의 삶을 회복해간다. 이처럼 이 소설은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살아남은 이의 삶의 이야기, 그리고 이러한 ‘심시선의 이야기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얻은 이의 이야기를 함께 담고 있는 피해생존자의 연대기이기도 한 것이다.


시선(視線)으로부터,

최근 수년간 정세랑만큼 독자와 비평계의 관심을 사로잡은 작가가 또 있을까. 하지만 그 작품 세계에 대한 비평적 접근이 활발했다고는 하기 어렵다. 소위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무화하며 유연한 작품 스타일을 구사해온 정세랑 작가는 그야말로 ‘독보적인’ 존재이자 ‘선을 넘는’ 매력의 소유자여서, 기존의 비평적 관점에서 접근하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세랑 작가의 작품이 던지는 중요한 비평적 질문은 이러한 문학의 경계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피프티 피플>에서도 서로 끊임없이 연결되는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선보인 작가는, 이 소설 시선으로부터,에서도 책을 열면 독자를 맞이하는 가계도에서부터 암시되는 다원적 인물 구성, 그리고 그들 각자를 시선의 주인으로 내세우는 다중 초점 서술을 선보이고 있다. 기존 소설이 주로 한 사람의 내면에 집중했다면, 시선으로부터,는 여러 인물에게 번갈아 서술의 초점을 부여하면서 ‘각자의 시선으로 저마다의 삶을’ 이야기하게 한다. 이와 같은 다원적 서술은 한 사람의 내면에 깊숙이 들어가거나 그 인물에게 세계 전체에 대한 시선 권력과 해석적 권위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하는 ‘거리감의 확보’, 그리고 중심성의 회피’의 전략으로 보인다. 한 사람의 내면에 침투하거나 그 사람의 시선과 경험을 오롯이 전유하는 이른바 초점화 서술 전략은 인생의 깊이와 복잡성을 전달하는 데 유리하지만, 그만큼 인물에게 권력과 중심성을 부여하게 되며, 그 결과 주변 인물을 대상화하거나 재단하는 폭력성을 지닐 수도 있다. 정세랑식 다초점 서술은 이러한 기존의 서술 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물론 이러한 다원적 서술은 서사의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한계도 있다. <시선으로부터,>역시 각 장의 첫머리마다 시선이 남긴 말과 글을 제시함으로써 시선의 세계에 힘을 실어주며 서술의 균형을 유지한다. 이러한 허구적 인용은 ‘시선의 일인칭’과 같은 서술적 효과를 자아냄으로써, 화가이자 작가로서 자신의 창작을 이어나가며 ‘독자적인 시선’을 이 세상에 남긴 그녀의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강조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삶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선의 고유한 태도를 인상 깊게 제시하고 있다. 폭력적 상황에서 살아남은 이의 시선은, 기존의 자기중심적인 일인칭의 시선과는 다르다. 그 시선은 자신이 행여라도 폭력성을 지니지 않도록 주의하는 시선이고, 주변의 상처 입은 것들을 유심히 살피는 시선이다. 다른 인물들의 시선도 조금씩 이러한 ‘시선의 시선’을 닮았다. 이러한 성찰과 돌봄의 시선을 제시한 것이 이 소설의 또 다른 미덕일 것이다.

안서현/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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