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히 불행한 두 여성의 희망찾기…공선옥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

입력 2022.01.30 (21:30) 수정 2022.01.30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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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KBS와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함께 선정한 소설 전해드리는 시간, 오늘(30일)은 공선옥 작가의 장편,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을 들여다보겠습니다.

80년대 후반, 지독히도 불행했던 서른 살 두 여성의 삶을 통해 당시 청춘들의 혼란을 그려낸 작품인데요.

절망의 극단에서 조심스럽게 희망을 찾는 인물들의 여정, 정연욱 기자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소설 제목에 등장하는 지명 '오지리'.

세상으로부터 잊힌 쇠락한 시골 마을, 말 그대로 '오지'나 다름없는 가상의 공간입니다.

오지리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두 친구 은이와 채옥은 서른 살이 되어 이곳에서 다시 만납니다.

은이는 출산을 앞두고 홀로 귀향해 시댁살이를 하며 멸시를 견디다 끝내 유산하고, 채옥은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친 뒤 아이를 키우며 홀아비를 간병하다 생계를 위해 몸을 팔기로 합니다.

더는 불행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적인 두 서른 살입니다.

[공선옥/소설가 : "밝은 절망의 빛이라고 제가 묘사를 했더라고요. 희망을 쉽게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려면 절망의 극단까지 가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도 은이와 채옥이 좀처럼 가까워질 수 없는 이유, 은이의 남편 상훈의 존재입니다.

상훈은 과거 채옥의 연인이었지만, 자기 집 머슴의 딸이었던 은이에 대한 연민을 품어왔고, 채옥이 보낸 로트렉의 그림은 엉뚱하게도 그 연민을 자극해 상훈이 채옥 대신 은이와 결혼하게 합니다.

한때 친구였던 세 사람 모두를 불행의 나락으로 밀어 넣게 된 선택.

겨우 30대의 문턱에서 비극적인 운명과 힘겹게 맞서는 서사는, 이념의 시대였던 1980년대에 20대를 소진해버린 청춘들의 초상이기도 합니다.

[공선옥/소설가 : "80년대에 20대 청춘을 보냈던 사람들이 90년대라는, 30대라는 첫 문턱에서 이미 노인이 되어버린 것 같은 그런 기분으로 그 시대를 맞이했던 것 같아요."]

희망을 쉽게 믿지 않을 만큼 세상사에 물들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절망에 빠져만 있을 수도 없는 나이, 서른.

작가는 희망에 좀 더 무게를 둔 암시만 남겨둔 채 이야기를 맺습니다.

주인공들의 결말을 뚜렷하게 알 수 없는, 공선옥식 해피엔딩입니다.

[공선옥/소설가 : "책장을 덮은 뒤에 그들이 햇빛이 비치는 따스한 길로 가고 있으리라는 상상을 독자들이 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1991년 등단한 뒤 처음으로 발표한 장편이지만, 불행과 맞서는 여성들의 고군분투를 통해 전환기의 혼란을 탁월하게 그려내,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이상숙/문학평론가 : "내가 바닥까지 왔으니까 이제 올라갈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갖거든요. 거칠어 보이고 서툴러 보이지만 자신의 세계관으로 끌고 가는 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 속 서른 살들의 자식들이 이제 서른 살이 되어버린 시대, 같은 서른 살에 소설을 발표했던 작가는 이제, 지금의 청춘들을 깊이 응시한 속편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공선옥/소설가 : "우리가 알지 못할 수많은 고뇌들로 얼마나 무거울까. 다른 형태이긴 하지만. 그러면서 그 시대의 서른 살과 이 시대의 서른 살들이 한 번 만나게 해주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KBS 뉴스 정연욱입니다.

촬영기자:김상하 황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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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독히 불행한 두 여성의 희망찾기…공선옥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
    • 입력 2022-01-30 21:30:00
    • 수정2022-01-30 21:53:21
    뉴스 9
[앵커]

KBS와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함께 선정한 소설 전해드리는 시간, 오늘(30일)은 공선옥 작가의 장편,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을 들여다보겠습니다.

80년대 후반, 지독히도 불행했던 서른 살 두 여성의 삶을 통해 당시 청춘들의 혼란을 그려낸 작품인데요.

절망의 극단에서 조심스럽게 희망을 찾는 인물들의 여정, 정연욱 기자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소설 제목에 등장하는 지명 '오지리'.

세상으로부터 잊힌 쇠락한 시골 마을, 말 그대로 '오지'나 다름없는 가상의 공간입니다.

오지리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두 친구 은이와 채옥은 서른 살이 되어 이곳에서 다시 만납니다.

은이는 출산을 앞두고 홀로 귀향해 시댁살이를 하며 멸시를 견디다 끝내 유산하고, 채옥은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친 뒤 아이를 키우며 홀아비를 간병하다 생계를 위해 몸을 팔기로 합니다.

더는 불행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적인 두 서른 살입니다.

[공선옥/소설가 : "밝은 절망의 빛이라고 제가 묘사를 했더라고요. 희망을 쉽게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려면 절망의 극단까지 가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도 은이와 채옥이 좀처럼 가까워질 수 없는 이유, 은이의 남편 상훈의 존재입니다.

상훈은 과거 채옥의 연인이었지만, 자기 집 머슴의 딸이었던 은이에 대한 연민을 품어왔고, 채옥이 보낸 로트렉의 그림은 엉뚱하게도 그 연민을 자극해 상훈이 채옥 대신 은이와 결혼하게 합니다.

한때 친구였던 세 사람 모두를 불행의 나락으로 밀어 넣게 된 선택.

겨우 30대의 문턱에서 비극적인 운명과 힘겹게 맞서는 서사는, 이념의 시대였던 1980년대에 20대를 소진해버린 청춘들의 초상이기도 합니다.

[공선옥/소설가 : "80년대에 20대 청춘을 보냈던 사람들이 90년대라는, 30대라는 첫 문턱에서 이미 노인이 되어버린 것 같은 그런 기분으로 그 시대를 맞이했던 것 같아요."]

희망을 쉽게 믿지 않을 만큼 세상사에 물들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절망에 빠져만 있을 수도 없는 나이, 서른.

작가는 희망에 좀 더 무게를 둔 암시만 남겨둔 채 이야기를 맺습니다.

주인공들의 결말을 뚜렷하게 알 수 없는, 공선옥식 해피엔딩입니다.

[공선옥/소설가 : "책장을 덮은 뒤에 그들이 햇빛이 비치는 따스한 길로 가고 있으리라는 상상을 독자들이 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1991년 등단한 뒤 처음으로 발표한 장편이지만, 불행과 맞서는 여성들의 고군분투를 통해 전환기의 혼란을 탁월하게 그려내,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이상숙/문학평론가 : "내가 바닥까지 왔으니까 이제 올라갈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갖거든요. 거칠어 보이고 서툴러 보이지만 자신의 세계관으로 끌고 가는 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 속 서른 살들의 자식들이 이제 서른 살이 되어버린 시대, 같은 서른 살에 소설을 발표했던 작가는 이제, 지금의 청춘들을 깊이 응시한 속편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공선옥/소설가 : "우리가 알지 못할 수많은 고뇌들로 얼마나 무거울까. 다른 형태이긴 하지만. 그러면서 그 시대의 서른 살과 이 시대의 서른 살들이 한 번 만나게 해주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KBS 뉴스 정연욱입니다.

촬영기자:김상하 황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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